덕불고(德不孤)
인생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모두 지혜롭게 보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시인 고은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올 때 못 본 그 꽃”이라고 읊었지만,
그도 한창 전성기일 때 저지른 '미투 '사건에 연루되어 순간에 추락하고
말았다. 최근에 내란 특검에 연루되어 정상에 떵떵거리던 사람들이 줄
줄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렇다. 올라갈 때는 뒤질세라 앞만 보고 서두르기 때문에 중한 것들을
놓치게 될 수 있다. 내려갈 때라도 볼 수 있으면 다행이련만, 끝내 보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사람도 허다하다. 정상이란, 오래 머무는 장소가 아
니다. 잠깐이고 내려와야 하는 곳이다. 주변을 두루두루 살피고 이것저
것 챙기다가 언제 간다고 느낄 수 있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 보면 그 사
람이 누구보다 멀리 와있음을 알게 된다.
시인 이형기는 <낙화> 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결별조차 축복으
로 받아들이며 지금은 가야 할 때임을 아는 사람,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꽃답게 사라지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귀는 빈천으로 바뀌고, 만남은 이별로 바뀌고, 젊음은 늙고 죽음으로
바뀐다.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이고 제행무상
(諸行無常)'이다. 인생의 참 모습이 숨김없이 드러날 때는 오히려 절정
에서 내려오는 순간이다. 한 창 때 눈부신 것은 당연한 것, 내려올 때
눈부신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내면의 빛을 지닌 사람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내려올 때 더 눈부신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
외부 상황이 변해서야 겨우 내려 올라치면, 이미 때는 늦어버린다.
스스로 내려오는 게 아니라 끌려내려 오지 않던가. 우리 인생도 이 미
노인이 된 이후에 내려올 준비를 하면 늦다. 오히려 올라갈 때부터 어
떻게 하면 인생의 황혼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를 고민 했어야지.
모두가 인생의 앞 모습만 보고 살다 보니 인생의 뒷모습을 신경 쓸 겨를
이 없다. ‘인생의 앞 모습이 남에게 보여주는 이미지라면, 인생의 뒷 모
습은 아무도 없는 밤중에 내가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인생의 앞 모
습은 성공을 향해 달려가곤 하지만, 인생의 뒷모습은 ‘고독과 불안’일
때가 많다.
최고의 음식은 식어도 그 향기를 잃지 않듯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절정에서 내려온 뒤에도 그윽한 향기를 남긴다. 생선 싼 종이
에서는 비린내가 나지만, 향 싼 종이에서는 향기가 풍기는 법,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
운가.” 라는 구절은 언제 읽어도 가슴을 날카롭게 후비고 지나간다.
저 타는 저녁노을처럼 장엄하게 사라져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야말로 멋진 인생의 주인공이 아닐까.
"화향백리 (花香百里) 꽃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주향천리 (酒香千里)
술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인향만리(人香萬里) 사람 향기는 만 리를
가고도 남는다." 라는 말이 있다. 인향(人香)이란 무엇인가? 바로 덕
향(德香)이다.“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라는 말이 있다.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으니 외롭지 않다는 뜻이다. 사랑하면
내 영역이 더 넓어지는 법 아닌가. 중국 사람들은 “좋은 이웃을 사는
데 천 만금을 지불한다.”고 한다.
좋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데 집값의 열 배라도 좋다는 말 아니겠
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