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탄(風樹之嘆)
”나무는 고요 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글이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어떤 무덤 앞
에서 목 놓아 울고 있는 청년을 만난다. 사연인즉 출세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있다
돌아와 보니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는 가슴 저린 사연이다.
한 번 가면 오지 않는 것이 세월이고, 한 번 가시면 다시 뵐 수 없는 분이 부모이시지만,
공자 시대는 평균수명이 지금의 반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100세 세대에 부모 묘 앞에서 울었다는 자식 있다.고 들어 봤는가
.누구나 부모 되기는 어렵지 않지만, 자식들로부터 ”참 좋은 엄마, 참 좋은 아빠“ 되기란
쉽지 않다. 생각해보면 내 덕에 내가 산 게 아니고 자식 덕에 내가 좋은 부모 되고 싶었
고 더 열심히 살았던 것이다. 자식은 어린 시절 이미 부모에게 평생 복을 주었고 평생 해
야 할 효도를 다 했다. 그걸 잊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 평화는 깨진 것이나
다름 없다. 딸과 부모 관계는 ‘나비 꽃 보듯’ 하지만 아들과 부모관계는 ‘소 닭 보듯’ 하는
게 현실이다.
세상 사람 누구도 자식에게만은 약하다. 하지만 내가 뭔가를 가지고 있을 때 자식과 내가
아무것도 없을 때 자식, 그리고 내가 건강할 때 자식과 내가 병들어 있을 때 자식은 양과
이리처럼 사뭇 다른 게 현실이다. 자식은 분명 내 핏줄이지만, 때로는 각박한 적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부모가 가진 것이 없으면 부모를 향한 자식들의 발 거름
은 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교육시켰다.고 꼭 좋은 부모인지는 한
참 더 두고 볼 일이다.
세계적인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이 애독했다는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소설의 주인공 고리오는 제면업자로 크게 성공한 뒤 두 딸을
애지중지 키워 귀족의 자산가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지참금으로 주며 결혼시켜 보내지만,
두 딸 들은 어버지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걸 눈치챈 고리오는 스스로 딸들 곁을 떠난다.
딸들도 아버지를 말리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발자크는 범죄에 아버지와 딸들이 공모한 셈이라고 표현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딸들은 내 것이었고 나의 전부였는데 다음 날 딸들은 나의 적이 되어버렸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이 소설이 발표된 지가 200 여 연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기저기서 일어나
고 있다. 물론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홀로서기를 하면서 부모를 극진히 대하는 자식들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고리오의 두 딸은 싸구려 하숙집에서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재산인 종신 연금증서까지
받아간다. 고리오는 비참하게 죽어가며 이렇게 탄식한다. ‘ 자식이 어떠한지를 알려면 죽어봐
야 겠군’ 아 이보게 자네는 자식 낳지 말게‘
이처럼 죽어가는 이들이 어찌 고리오 뿐이겠는가
고리오는 죽어가면서 지난날 따들을 회상한다.
어릴적 딸들은 나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에 세상 모든 딸들처럼 말이다.
”하느님 왜 그 애들을 영원히 어릴 수 없었을까요.라고 읊며 죽어간다.
그의 임종을 지킨 사람은 두 딸이 아니고 허름한 하숙집에서 기거하던 착한 청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