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의 조건
바둑을 처음 배우러 가면 걸레질부터 시키는 것이 전통이다.
언뜻 보면 허드렛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지나고 보면 그
시간 들이 무의미하지 않다.
가로 새로 19줄 바둑판을 닦으며 머릿속으로 수를 되새겨
보며 자신만의 감각을 키우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감각은 정해진 커리큘럼보다 강한 기반
이 되며 몸으로 바둑판과 친해지는 일은 머 리로 배우는 것
보다 훨씬 더 깊은 통찰력을 준다.
마치 장인이 도구와 하나가 되어야 진짜 솜씨를 발휘하는
것처럼, 정해진 길을 따라 걷는 것보다 혼자만의 시간 속
에서 고독을 견디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서 늘 누군가가 대신해서 선택해 주고
길을 정해줄 수는 없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오롯이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해야 한다. 기본기는 스승에게서 배우지만 승
부의 순간에는 오롯이 자신만의 판단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혼자만의 길을 걷는 건 때로 외롭고 더디지만, 그것이 진짜
나를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성공과 실패는 결코 그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실패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과장의 일부분일 뿐이며 그 과
정을 거쳐야 비로소 다음 길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멋진 승리는 그렇게 수많은 패배를 통과한
끝에 비로소 도달하는 지점일지 모른다.
그래서 정상에 오른 고수들은 늘 이긴 사람이 아니라 수없
이 쓰러지고도 다시 일어선 사람들이다. 실패를 통해서 한
걸음씩 자신만의 생각을 쌓아가는 축적의 예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