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
사람의 마음을 알기란 매우 어려워 우리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
속은 알 수 없다. ‘인심은 조석변’ 이라 똥 누러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
르다. 는 속담이 전해지는 걸 보면 인심의 깊이를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뜻 아닌가.
한 배 속에서 태어난 형제의 마음도 알기 어렵다. 그 뿐인가 그래 내 마음 나도 모
른다 는 말이 생긴 것이다. 오죽하면 '자식도 겉을 낳지 속을 낳지 않는다'.는 말이
생겼을까. 참으로 알기 어려운 게 사람 마음이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썼다는 “인심조석변, 산색고금동(人心朝夕變, 山色
古今同)” 사람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지만, 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는 글씨가 언젠가 청담동 경매에서 13억 원에 낙찰되었다. 는 기사를 보고 그림이란
보는 사람의 눈에 좋으면 좋은 그림이지만, 글씨만은 누가 썼느냐 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명필이라던 매국노 이완용의 글씨는 헐값에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조선 시대 15세에 영조의 계비로 간택된 정순왕후는 21대 영조가 66세였으니 자그만
치 51세의 나이 차이가 있었다.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 보다 열 살이 어리다. 한마디
로 조선 개국 이래 가장 나이 차이가 큰 왕과 왕후였다. 당시에는 간택령이 내려지면
전국의 15~20세의 양반 집 규수들은 일체의 혼사를 멈춘다. 당시 간택은 왕비나 대왕
대비가 최종 권한을 갖지만, 영조는 다른 왕들과 달리 직접 간택에 나선 것은 처음 있
는 일이었다.
영조는 무수리 출신이었던 숙빈 최씨의 아들로 우여곡절 끝에 30세가 되어서야 왕위
에 올라 52 년간 재위하면서 조선 왕조 사상 가장 오랜 치세를 누린 왕이 되었다. 그가
굳이 왕비 간택에 나선 것은 여색을 밝힌 경망한 처신이 아니라, 교양과 지혜를 갖춘
최소한의 말이 통하는 소통이 되는 사람을 직접 찾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영조는 간택 면접에서 규수들에게 한결같이 이렇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냐”? 그런데 대체로 규수들은 ‘산이 깊다, 물이 깊다.’ 등의 교과서적인 답을 했다.
그러나, 훗날 정순 왕후로 간택 받은 규수는 “인심이 가장 깊다.” 고 답했다. 이 답이 영조
를사로 잡은 것이다.
이에 영조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가장 아름다운 꽃은 무엇이냐? 고 이에 어린 규수는 ”목화 꽃” 이라고 답한 후 그
이유를 이렇게 덧붙였다. 목화 꽃은 비록 멋과 향기는 빼어나지 않으나, 실을 짜 백성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꽃이니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할아버지 뻘 되는 영조가 이 말을 듣고
어찌 감탄하지 않았으랴!!! 말이 통하는 정도를 넘어 그 한마디 한마디 나이에 걸맞지 않은
깊이와 너비가 간택에 결정적 요인이 되어 혼례를 치루 게 되었다. 영조는 83세를 일기로
승하 했고 왕후는 영조와 17년 남짓 산 셈이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은 人心이다. 참으로 알기 어려운 게 사람의 마음이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지 않던가. 사람의 마음은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니 모든 평가는 무덤에서야 끝난다는 뜻이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은 깊은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얕은 수로는 안 된다. 천근 만근 같은 무게가 실려야
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태풍처럼 바닷속 심저까지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스스로 뽐내는 겉멋과 향취가 아니라 목화 꽃
처럼 편안하고 따듯한 자기 희생이 따르는 마음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