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불기(君子不器) 2
논어 ‘위정편’에 <군자불기( 子不器)>라는 공자 어록을 볼 수 있다.
君子는 그릇이 아니다. 는 말이니 사람은 일정한 용도로만 쓰이는 고정된 그릇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사람을 보고 ‘그릇이 크다. 아니면 종제기처럼
작다’ 하는 말은 인생을 두루 살필 줄 알고 원만하게 불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
린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릇처럼 한 번 모양이 정해지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속된 말로 사람 못 변한다. 바위처럼 굳어진 채 못 변한다.
그 본래 틀을 깨고 부수고 새로워 져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서는 뛰어나도 다른 분야에서는 형편없는 이를 자주 보게 된다.
높은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들이 쉽게 망가지고 추락하는 위태로운 모습을 볼 때마
다 생각하게 되는 교훈이다. 왜 못 변할까.
나도 당신도 마찬가지다.
120세라는 초고령사회가 눈앞이다.
오래 산다는 만큼 삶의 변화도 요동치는 곡절도 생길 가능성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그때마다 긍정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선택과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인생 마
지막이 한으로 남게 될 것이다. 군자란 고정된 편협한 그릇이 되지 말아야 한다.
똥고집을 부리며 갈라치기나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이 아니고 통섭하고 배려하는
융통성이 발휘되어야 한다. ‘끝이 좋아야 다 좋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변하고 또 변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덜 후회하고 더 의미 있는 삶으로 만들기 위해 ‘君子不器’의 지혜를
고전에 불과하다. 고 팽개치지 말아야 한다. 현대 경영학의 거두 <피터 드러커>는
“천재(天災)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인재(人災)는 다르다. 전쟁도, 환경파괴도, 추악한 범죄도, 정보유출도,
게임도 도박도 마약도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행할 수도, 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고 말했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유명한 시인 굴원(屈原)이 쓴 소설 <창랑지수<滄浪之水>
어부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중국인이라면 굴원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창랑지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굴원과 창랑지수>는 중국 사람들의 삶 속에 살아 있는
소설이다.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굴원이 조정에서 쫓겨나 강호를 떠돌아다
니며 시를 읊고 거닐고 있었는데 그 안색이 초췌하고 몸도 삐쩍 말라 있었다.
한 어부가 그를 보고 물었다.
‘선생은 그 유명한 삼려대부(귀족 집안을 다스리는 벼슬)가 아니시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소?
굴원이 말했다.
‘온 세상이 더러운데 나 혼자 깨끗했고, 모든 사람들이 술취해 있는데 나 혼자 정신이
맑았소. 그래서 쫓겨 낫소.
그러자 어부가 말했다.
’성인은 외부사물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더러우면 왜 함께 흙탕물을 튀기면서 살지 않고 모든 사람들
이 술 취해 있으면 왜 당신도 술지게미라도 먹으며 같이 취하지 않고 뭣 때문에 매사
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상하게 행동하다가 스스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단 말이요.
그러자
굴원이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갓 목욕하고 나오는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고 나서 쓰고, 갓 목욕하고
나온 사람은 옷을 털고 나서 입는다.고 했소.
어찌 자기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갓이나 옷이 닿게 한단 말이요.
차라리 강물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밥이 될지언정 어찌 이 깨끗한 몸에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덮어쓴단 말이요. 분명히 굴원은 큰 그릇이요. 쫄보가 아니였다.
이 말을 듣고 어부는 빙긋이 웃으면서 노를 두드리고 떠나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내 발을 씻으면 될
것을.......이 노래가 품은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더러우면 함께 흙탕물을 튀기며 살면 될 것을 혼자서 고상하게 행
동하다가 망하면 무슨 소용인가.
쓸쓸하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