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지말라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 새겨진 한마디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였다.
그런데 우리네 묘비는 죄다 천편일률적으로 생몰(生歿-태어난해와죽은해)연도만
다를 뿐 거의 똑같다. 내용도 어려운 한자로만 새겨저 있어 풀이하기가 쉽지
않다. 버나드 쇼처럼 이 풍진세상을 살다간 사람에게 의당 있을법한 “자기만
의 한마디”는 우리네 묘비에서는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
버나드 쇼는 평생 글 쓰는 사람이기에 자기 묘비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위트와 유머가 넘치 는 묘비명을 썼을 것이다.
2002년에 타계한 양산 통도사의 중광스님의 묘비명은 ”괜히 왔다 간다.“였다.
그렇다!!
우물쭈물하다가는 그냥 간다.
우왕좌왕하다가는 괜히 왔다. 간다.
어떤 묘비든 예외 없이 생몰 연도가 있기 마련이다.
한 인생의 시작과 끝 사이는 그 사람의 삶이 압축돼 있는 셈이다.
짧든 길든 삶의 희로애락, 그 모두가 압축된 것이다.
날마다 한 점 한 점 찍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매일 자기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점을 찍는 것이다.
그 점들이 모여서 우리 인생을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음악의 신동이라고 부를 때, 여덟 살인 그는 이미
말콤 그레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주장했던 ”1만 시간의 법칙“ 을 끝
낸 정상급의 베테랑이 되어있었다.
이처럼 삶은 존재를 쪼개는 듯한 고통 끝에서야 바뀐다.
내가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고통 말이다.
가끔 존재를 찢는 듯한 고통을 거부하려고 헛되이 싸우던 사람이 망가지
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일본 사무라이들의 고전이라 할 <오륜서>의 저자 야마모토 무사시는 진검
승부에 임하는 첫 번째 자세를 ”머뭇거리지 말라“고 했다.
연습이 아닌 진검승부에서는 머뭇거리면 그대로 상대의 칼을 맞기 때문이다.
칼 맞은 후에 자세를 가다듬는 것은 어리석다.
어차피 인생은 진검승부다.
머뭇거리면 칼 맞고 우물쭈물하면 그냥 사정없이 밟히게 된다.
그게 세상이다.
누구나 다 사라 진다. ”한마디“하고 가야 할 것 아닌가.
우물쭈물 하지 말라. ’괜히 왔다 가지‘ 말고, 오롯이 내 삶을 이어갈 점들을 다부
지게 찍고 가자. 후회 없게 말이다. 성경은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
고. 불경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했다.
우왕좌왕(右往左往),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말라는 말이다.
마른 씨앗이 3000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다가 마침내 유리한 환경을 만나면
식물로 성장한다. 놀랍지 않은가.그래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 세계의 본질이
합리성이 아니라 “삶에의 의지”라고 했다.
인간의 생명력을 식물에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