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우울증
최근 MZ 세대(20~39세)에서 생긴 우울증이라는 신조어를 이른 말이다.
커피같은 카페인 섭취로 생긴 부작용이 아니라. 남들이 SNS에 올린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우울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카페인’은 카카오 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
로 명품, 외제 차, 호캉스, 최고급 레스토랑, 등 SNS에 올라온 화려한 일상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에서 생기는 심리적 우울증이다.
이제 사람들은 전통적인 미디어(신문, 방송)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와 SNS
에서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문제는 이런 포털 사이트와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은 가짜뉴스의 온상지가 됐다. 시도때도 없이 밀려드는 오보, 거짓 정
보, 헛소문, 유언비어 등의 방식으로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왜곡 날조한다.
유포된 내용의 진위를 판별하지 않고 그저 믿고 싶은 대로 받아들인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것도 홍수처럼 밀려드는 엄청난 양의 정보에 빠져 살고 있다.
가짜뉴스 같은 잘 못된 정보들은 주의를 분산시켜 혼란에 빠뜨린다. 수 많은
정보 조각 가운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식별하는 능력이 절실하
게 요구되는 시대다. 지식은 넘쳐나도 지혜는 없고, 이념은 넘쳐나도 철학이
없고, 목표는 있으나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욕구에 따라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소비사회에
살고 있다. 챗GPT, 메타버스, VR,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는 전 세계의 사
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게 하고 있다. 유튜브와 냇플릭스 등 OTT 플랫폼
은 인터넷만 연결하면 스트리밍 서비스, 온라인 게임, 디지털 음악, 등으로
무한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스마트폰만 있으면 실시
간으로 원하는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해 빠져들게 한다.
잠들기 전에 잠깐만 유튜브를 보려 했다가 몇시간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 빠져
나오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알고리즘이 우리의 관심 분야를 읽고 콘텐츠를
찾아주면서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탓이다. 영화, 드라마, 게임도 마찬가지다.
딱 한 번 만 더, 하다가 밤을 새운 적이 있을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의 최종 목적은 시청 시간을 높여 광고 등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기에 공급자는 의도적으로 어떤 이용자든 중독될 수밖에 없도록 알고리
즘을 고안하고 있다. 이용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중독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 디지털 유혹에 자극받
고 있다. 계속해서 밀려오는 지식과 정보, 오락물 가운데 어떤 것이 나에게 필
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 구분하기가 힘들어졌다.
홍수에 먹을 물이 없다 하지 않던가.
온갖 유혹이 흘러넘치는 풍요의 시대에 어떻게 해야 헛된 욕망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을 것인가를 숙고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너 자신을 알라” 는 말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자각하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자기성찰의 화두로 '이 뭐꼬'를 강조했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그치고 멈추는 “절제(節制)”가 아니겠는가.
절제란 멈추고 그치는 행위다. 그걸 배워 본적이 없어 화를 자초하게 된다.
‘節制’는 자기 자신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과잉과 결핍 사이에서 매 순간 흔들릴 때가 있다.
이때 가장 필요한 삶의 원칙은 '그치고 멈추'는 자기 ‘節制’다.
행복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節制’를, 아리스토텔레스
는 ‘중용(中庸)’이라 했고, 공자는 논어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