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인(文明人)
성서에 한 유대인 남자가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강도들이 나타나 그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고 그를 거의 죽을 정도로
때린 뒤 길에 버려두고 떠났다. 마침 한 유대인 제사장이 쓰러져 있는 그 사
람 곁을 쳐다보고도 그냥 지나쳐갔고, 나중에 또 다른 유대인 종교 지도자도
그를 지나쳐 갔다.
두 사람 모두 그 사람과 같은 유대인이었지만, 멈추어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다른 민족 출신의 남자는 그 길을 지나가던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불쌍히 여겨 포도주와 기름으로 상처를 싸매
고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그를 여관에 데려가 밤새도록 돌봐 주었다.
다음 날 그는 여관주인에게 돈을 주며 그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고, 혹시 비용
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주겠다고 약속했다.
인류학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거릿 미드>는 이렇게 말한다.
초고속 인터넷과 최고 성능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해서 문명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돌도끼로 싸우는 것은 야만인이고, 핵탄두 미사일로 전쟁하
는 것이 문명은 아니다. 우리가 오해하듯이 문명인의 증거는 그런 외부의 도구
에 있지 않은 듯하다.
고난에 처한 동료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가 역경을 이겨 내도록 돕는 것이 문명
인의 첫 신호다. 그 연민과 공감이 인류문명을 지금까지 지켜 주었다.
상처 입은 어떤 영혼의 상처를 연민과 공감의 손으로 싸매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누가 했는가.? 그렇게 한 영역만큼 나는 문명인이며, 외면한 영역만큼 야
만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만큼 문명인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기차 안에서 두 아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좌석 위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근처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쳐다보면 다정한 미소를 짓고 그러면 아이들은 다시 장난을
치느라 바쁘고 남자는 계속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보곤 했다.
다른 승객들은 아이들의 장난기에 화가 나고 아이들 아버지의 태도에도 짜증이
났다. 밤이었기 때문에 다들 쉬고 싶었다.
보다 못한 한 승객이 남자에게 소리쳤다.
당신은 대체 어떤 아버지이기에 아이들이 이토록 버릇없이 행동하고 있는데 말리
기는커녕 미소로 부추기고 있소. 아이들에게 타이르는 것이 당신의 의무 아닙니까?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 중에 있습니다.
아내가 친정에 다니러 갔다가 어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러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중인데 이제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무리 해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소설 <위대한 개츠비> 의 도입부 중 한 문장이 떠오른다.
“누구든지 남을 비난하고 싶을 땐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라고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와 같은 유리한 처지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
야 한다.” 이 문장은 책 속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충고지만, 이 문장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충고처럼 느껴졌다.
오래 전 어떤 일간지 칼럼을 읽은 기억을 옮긴다.
어떤 부부가 특수교육이 필요한 특수장애를 가진 여덟 살 아들을 데리고 저녁 외식을
하러 나왔다. 아이 때문에 바깥나들이가 너무나 어렵고 괴로운 일이었지만 큰맘 먹고
용기를 냈다. 아니나 다를까 주문할 때부터 아이는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고 테이블을
마구 쳐대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손님들을 짜증 나게 하는 소동이었다.
말려봐도 소용이 없고 모두 좌불안석이 됐다.
그 때 여종업원이 눈물을 글성이며 테이블로 다가왔다.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를 어쩌지 못했다.고 호된 꾸중을 듣겠다고 생각했는데 .....
여종업원은 “어느 손님이 가족분을 위해 계산을 모두 해주시고 가셨다.”며 그 손님이
전해달라고 했다는 쪽지를 건냈다.
아이 엄마와 여종업원을 눈물짓게 한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신께서는 특별한 아이를 특별한 부모에게만 허락하신답니다.”
가끔 식당에서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늘 못 마땅 해 했었고 그 부모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이해를 못 했던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 아닌가. 얼마나 그릇
이 크기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