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주성(無定住性)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금방 한 군데로 썰렸다가 또 금방 다른 데로 쏠려가는
심리를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를 ‘호기심(好奇心)’
이라고 말했다. 호기심은 현대인들의 특징으로 새로운 것을 경탄하면서 관찰하
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으로 바꿀 때의 초조와 흥분 때문에 호기심을 보
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정판의 신상, 여행지의 멋진 풍경, 맛집의 음식, 성공이 주는 만족, 등 이런 호
기심으로 인한 이런 물질적인 것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다가도 다른 것과 비교
가 되기 시작하면 금방 달라져 버린다.
남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 역시 중요하게 여기게 되기 쉽지만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으로는 살 수 없다. 영원히 남들의 것을 따라가느라 애만 쓸 것이기 때
문이다,
세상의 기준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비교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지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사람이 누리고 있는 것을 나도 누리고 싶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갖출 수 없다는 게 진실이다.
누구는 돈은 있지만, 가족관계가 엉망이고 누구는 관계는 좋지만, 건강에 문제가
많고 누구는 건강하기는 하지만 돈이 없다.
어차피 무언가가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 있겠는가.
그래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람들은 그 풍족함 대신에 치르는 대가가 있다.
가족도 친구도 돈과 돈의 관계로 대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을, 오래 살다 보니 알게
되더라.
그들에게도 누구에게나 꺼내 놓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 사람은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지만 남모르는 사연이 있다.
돈이 많은 삶은 다른 걱정이 있고 다른 걱정이 없는 사람은 돈이 없다. 어려움이 없
는 사람 있겠는가.
원래 타인의 삶은 좋아 보이는 법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별거 아닌 것 같고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은, 특별한 것 같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누리고 있는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요즘에 ’카페 우울증’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으로 인한 우울증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SNS에서는 자신이 우울하다는 얘기는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소통의 욕구 때문에 SNS를 하면서 위로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SNS에서 만나는 삶은 사실 굉장히 편집된 것이 너무 많다.
좋은 것만 내세운 것일 뿐이어서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누군가에게 자랑이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고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말이다.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