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리코너 장인수 선생 노량진 대성학원 입시 전문학원에서 강사로 퇴직후 1만여권의 책을읽고 주옥같은 내용 을 선별하여 진서리 코너에 게제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꿈 자식에게 읽게 하십시요
  •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2024-01-19
진서리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스웨덴의 어느 공동묘지 입구 동판에 새겨진 글을 우리 말로 번역하면

“오늘은 나, 내일은 너,” 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죽음은

시차(時差)는 있을지라도 오차(誤差)는 없다. 나는 이 대범한 진리를 왜

잊고 살았을까? 아마 죽음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을 진정으로 나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잊고 산다. 다 죽어도 나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죽은 이들의 저 조용한 침묵의 가

르침! 오늘은 나, 내일은 너,” 라는 문구를 보면서 숙연해지는 것은 인

지상정 아닌가.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잊지 말라는 당부의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화려한 연회를 열 때마다 노예가 은쟁반에 해골을 받쳐 들고

참석한 손님들 사이를 지나다니게 했다고 한다. 그 건 “메맨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죽음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현재의 삶이 더 진

지해진다는 것을 로마인들은 200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이 어느 때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거름,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는 일

은 곧 죽는 일이다.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나는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 설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행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를 등록할 때 지체

없이 찾아갔었다.

어느 호스피스의 말에 의하면 죽어가는 사람이 “사업에 좀 더 열정을 쏟았더

라면”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마지막으로 전하는 세 마디가 있

다 고 전한다.

‘그때 좀 더 참을 걸,

’그때 좀 더 베풀 걸,

‘그때 좀 더 재미있게 살 걸, 이라고 했단다.

이 시대의 어른이셨던 법정 스님의 산문 <미리 쓰는 유서>라는 책에서 스님

은 ’내가 죽거든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이니 번거롭고 부질없는 짓

은 하지 말라. 그것은 나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화나게 하는 일이다.

스님은 지금껏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결국 타인이다. 우리는 이 세상

올 때도 혼자 왔고, 죽을 때도 혼자 갈 수밖에 없다. 죽음 앞에서는 사랑하는

가족까지도 타인이다.

스님은 죽음 앞에서 후회되는 일이란 이 세상 살면서 지은 허물도 많았고, 그

중에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허물도 적지 않다고 했다. 젊은 시절 저지른 허물

이 줄곧 그림자처럼 쫓고 있었다고 말했었다.

죽음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멋대로 살거나 오만방자하지 못할 것이

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이 목전에 다가와서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후회

를 한다. 만일 내가 죽음에 직면했다면 나는 무슨 후회를 할까? 생각해 보

니 시시 때때로 ‘감사’ 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제일 후회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