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論爭)
2500년 전 중국의 사상가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문장‘ 이다.
내가 그대와 논쟁한다고 하자.
‘그대가 이기고 내가 졌다면, 그대는 정말 옳고, 나는 정말 틀린 것인가?
내가 이기고 그대가 졌다면, 나는 정말 옳고, 그대는 정말 틀린 것인가?
한쪽이 옳으면 다른 쪽은 반드시 틀린 것인가?
둘 다 옳거나 둘 다 틀리는 경우는 없는 것인가?’
논쟁에 대한 장자의 우화를 들어보자.
밀림 속에서 동물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서로 양보하고 도와가면서 평화롭게 잘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호랑이와 당나귀 사이에 사소한 충돌이 생겼다.
당나귀가 한 말에 호랑이가 짜증을 내며 ‘풀은 초록색이야!.’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당나귀는 모두가 놀랄 정도로 더 크게
외쳤다. ‘풀은 파란색이라니까!.’
그 후 ‘초록색!, 아니야, 파란색!, 초록색이라니까! 파란색이라니까!
하고 연거푸 고성이 오갔지만, 시간이 지나도 논쟁은 멈추지 않았다.
이 둘의 논쟁에 다른 동물들도 덩다라 편이 갈라져 ’초록색!, 파란색!
을 외쳐댔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밀림의
세계가 파국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마침내 동물들은 그들의 왕, 사자를 찾아가 판결을 청했다.
사자는 당나귀와 호랑이의 주장을 듣고 나서 잠시 심사숙고한 후 호랑
이가 틀렸다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판결에 따라 호랑이는 소란을 피운
죄로 1년 동안 밀림에서 추방되어야 했다.
떠나기 전 속이 상한 호랑이는 사자를 찾아가 풀이 초록색이라는 사실
은 온 세상이 다 아는데 왜 당나귀 편을 들고 자신을 벌했느냐며 하소
연했다.
그러자 사자가 말했다. ‘물론 나도 풀이 초록색인 줄 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와 논쟁을 벌였기 때문에 너를 벌한 것이다.
논쟁을 하려면, 자신보다 지식과 지혜가 높은 자와 해야 한다.
어리석은 자와 무의미하게 논쟁함으로써 너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것이 네가 벌을 받는 진짜 이유다. 알겠느냐.
산행 때에 정상에 올라와 휴식을 취하고 담소하는 중 한 친구가 특정 정
치인을 거론하며 그분은 정치적 탄압을 받는다고 말한다. 부정한 일을
전혀 하지 않을 지도자인데 조작 수사의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럴 때 나는 적극적으로 동조해 준다. 맞아! 나도 생각이 같아. 라고
동병상련의 공감까지 표명한다. 그러자 그 친구는 논쟁의 동력을 잃고
만다. 오늘 새로 쓰고 온 모자는 어디서 샀는지 멋지다고 화제를 재빨리
돌린다. 이것이 좌우에 대한 나의 정치적 신념이다.
논쟁은 더 강한 논쟁을 부르기 마련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주장은 사실보다 믿음이 앞서는 사람이다.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나아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한다면 당신은 이것은 진영을
나누어 자기편을 감싸고 상대편을 무조건 비난하는 정치적 견해에서 특히
강해진다.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분노라는 수렁에 빠진 가짜 지성이 작동한다.
그리고 함께 모여 큰 목소리를 내면 그것이 진실이 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말이 옳다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심리다.
누군가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죽고 사는 생명에 관련된 일이 아닌 한
나는 조건없이 동조해 준다. 이렇게 나는 ‘받아들이고 흘려보낸다.’
진영논쟁으로 친구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논쟁에서 이기는 내공이 아니라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내공이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했던 공자보다 내가 장자를 좋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