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조삭비(如鳥數飛)
논어 첫 장 첫 줄에 공자가 말하기를 “학이시습 불역열호(學而時習不亦說乎)“
라 했다.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논거가
있는가? <논어>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정신이 바로 호학(好學)이다.
이것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배운 뒤에야 부족함을 안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공자는 인류 최초로 사학의 시조인 학당(요즘의 기숙학원)을 차려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에 못마땅한 제자 자로가 선생님이시어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답답합니다. 선생이 이상한 짓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자로가 말하기를 ‘산죽(山竹)은 남이 잡아 주지 안 해도 곧게 자라는데 배움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따진다. 자로는 본래 학문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먼
시중 잡배 건달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주먹세계를 주름잡는 조폭이다.
공자는 자로의 성격을 알아차리고 자로야, ”네 말이 맞다”.
그렇지만 ”화살에다 깃을 달면 화살이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날아 간다.”
이런 것을 배우면 더 효과가 있는 것 아니냐?
공자의 이 말에 자로는 무릎을 꿇고 그때부터 충직한 제자가 되어 끝까지
공자의 곁을 지키며 수행한 제자였다.
누가 감히 공자에게 시비를 걸겠는가? 자로에게 걸리면 죽는데...
배우고 익힌다는 말은 한 번 듣고 보는 것으로 끝나는 작업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긴 공부 과정임을 의미한다. 학습(學習)이란 말을
맨 처음 쓴 사람이 공자다. 학(學)은 습(習)과 함께 하는 것이다. ‘습(習)’
이라는 한자를 보면 날개 ‘우(羽)’ 밑에 ‘날 일(日)’자가 있다.
새가 매일 같이 날개짓을 하듯 배움도 늘 부지런히 익혀야 한다는 말이다.
배움이란 “여조삭비(如鳥數飛)”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없이 자주 날개짓을 반복해야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혀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