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좀 잡아줘
어떻게 살 것인가? 명확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고민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머지않은 미래에 죽는다.
그런데 억울한 것은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항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죽어 없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그렇다. 노화와 죽음은 필연 아닌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도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있다. 거부할 수 없느 것은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 직전에 내 누이가 지병으로 오랫동안 요양원 신세를
지고 계실 때 문병차 가면 나는 뼈와 가죽만 남은 누이의 팔다리 마사지를
해주었다. 통증으로 시달린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장모님이 요양원에 계실 때도 마찬가지로 팔다리 마시지를 해드렸다.
그때 요양원 간호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손”이라는 발음을 하는 경우가 꽤 많다고 했다. 입을 벌릴 기력조차 남지 않
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한 번 더 가족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서 “손 좀 잡아줘”
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길을 피할 수 없다. 일전에 가깝게 지내던 친척이
숨을 거두었다. 그는 이미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가족이 있었는
데도 순간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추웠을
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가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고 달려가 그의 손을 잡
았을때는 이미 손이 얼음장처럼 차아왔다. 얼마나 따뜻한 손이 그리웠을까.
따뜻한 가족의 손 잡는 체온만이 지독한 외로움과 추위와 두려움을 벗고 떠
날 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다.
나는 틈틈이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스스로 해답을 내놓는다.
인간의 고질적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결국 타인의
‘따뜻한 손길’이라는 확신을 가져본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요”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을 때는 생존 자체만을 위한 삶에 그치지만 죽음을 의식
하면 후회 없는 삶을 최대한 노력하게 될 것 아닌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도 곧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산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오는 법, 목숨은 하늘에 맞기자. 죽음이
다가옴을 의식하면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동의보감에
“긴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 타인과 정서적으로 감정이 통하지 않는다.”고 했
다. 사람은 몸과 마음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으면 자신의 고통은 물론이고
상대의 아픔과 속사정을 짐작하거나 공감하기 어렵다는 말 아니겠는가.
그래서 더 따뜻하게 손을 잡아 줄 수 있어야 한다. 머물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