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
사랑은 변하는 걸까? 사랑이 아닌 것을 진정한 사랑으로 착각한 것일까?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결혼이라는 결과에서 행복이라는 결론이 맺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결혼 전에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 된다고 말한다.
냄비처럼 뜨겁게 달궈졌던 사랑이 그 열기가 식어버리기까지 채 몇 년도 걸리지 않
기 때문이다. 사랑의 문제는 동서양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1968년 한국의 가왕 이미자의 히트곡 ‘여자의 일생’ 노랫말이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낸
다.”~우리나라 전후 세대 여인들의 애창곡이다. 내 누이 동생의 십 팔번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작가 기 드 모파상이 6년에 걸쳐 집필한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도 마찬가
지다. 작품의 주인공인 <잔느>는 열일곱 살의 순진무구한 처녀였다. 불행하고도 비
극적인 일생을 담담하게 그린 소설로 잔느의 삶을 통해서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적나
라하게 보여준다. 청춘일 때는 누구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 속에서 포
근한 봄날처럼 따뜻한 사랑을 기대한다. 하지만 가슴설레던 사랑의 결과가 절정의
황홀함을 맛보기도 전에 찾아온 권태로움과 비극으로 허무하게 끝이 나기도 한다.
마치 주인공 잔느의 사랑처럼......
잔느는 쥘리앵을 신이 자신에게 보내준 운명의 남편인 줄 알았다.
그는 자신을 위해 창조된 존재, 자신의 일생을 바칠 존재로 여기며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런 격렬한 충동과 미칠듯한 황홀감에 빠져 사랑이라고 착각한 잔느는 결혼
후 바로 권태로움에 빠진다. 쥘리앵이 이미 잔느와 연애할 때부터 하녀 노잘리와 관계
를 맺고 아이까지 낳는다. 또 잔느의 친구인 백작부인과도 관계를 맺다가 불륜 사실이
밝혀져 비참하게 친구가 살해 당한다.
바람둥이 남편이 죽은 뒤 일찍 과부가 된 잔느는 외 아들 폴에게 나머지 인생 전부를
걸고 살아가지만 너무 철없이 귀엽게만 기른 탓인지 폴은 술과 도박에 빠져 지내다가
끝내 가산을 탕진해 버리고 만다. 결국 저택 마저 팔아버린 잔느는 나이가 들어가며
고독과 절망 속에 살아간다. 우리 속담처럼 “서방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하지
않던가.
그녀는 평범한 삶의 단순한 행복조차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때때로 자신은 늙어 버렸다는 것, 자기 앞에는 음울하고 고독한 세월만 남고, 더는
기대할 게 없다고 푸념한다. 잔느는 집요하고 가혹한 운명의 희생자처럼 보였다.
흔히 운명의 여신은 갖고 놀고자 하는 사람들을 고른다고 한다.
그리고 친근하게 다가와서 유혹하고 나서는 그들이 안심하고 지내면서 자신들의 몰
락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때 갑자기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떠나버림으로써 인간
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안겨준다고 말한다.
움명의 여신이 가져다 주는 행복은 언제 또 빼앗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행복은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이라 말할 수 없다. 참된 행복은 물질적인 것, 권력, 명성,
그리고 육체의 쾌락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것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소설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
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삶이란 앞을 향해 함께 걷는 것이다.
서로 얼굴만 마주 보고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