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중
몇 달 전 충남 서산에 있는 연암산(440m)등반을 하고 하산 길에 <천장사>에 들렸다.
한국 불교를 중흥시킨 <진짜 중 경허 스님>의 일화를 통해 반야심경을 드러내고 싶어
서산에 있는 천장사(天藏寺)에 어느 날 찬 바람이 매섭게 불고 눈발이 날리는 저녁
무렵 젊은 여인이 나타났다. 얼굴을 보자기로 감싼 이 묘령의 여인은 두 눈만 보일 듯
말듯 내놓은 채, 그 초 라한 행색이 걸인이 틀림없었다. 이 여인은 경내를 몇 번 살피
“여보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경허스님이 방문을 여니, 여자는 온몸을 떨며 서 있었다.
그런데 시봉을 들던 사미승(어린 중)이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눈이 솔방울만 해져서
경허스님의 제자 만공스님에게 달려갔다. “스님 스님 저 좀 보십시오.” “뭔 일이냐?
경허스님이 날 찾으시던.?” “그게 아니옵고.” “그럼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이 말씀을
드려야 할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만.”출가한 수도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여
색이요, 애욕이며 수도 생활에 가장 무서운 것이 성욕이라는 것은 승단의 계율로서 대
대로 강조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여인이 경허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니 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데, 그러느냐, 어서 말해 보거라.” “저어 경허스님 방에 손님이 한 분 들어가
셨는데요. 실은 그 손님이 좀 이상한 손님이라서요.”“이상한 손님이라니 그게 뭔 말이냐?”
“여자분이십니다.” “뭣! 여자?”“아니 그게 정말이냐? 틀림없이 보았단 말이냐?”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죠. 치마를 입고 얼굴은 보자기로 가린 여자였습니다.”“네가
뭘 잘 못 봤겠지.설마 스님께서 여자를 방에 들이시기야 해겠느냐.?”“못 믿으시겠거든
직접 가보시면 알 것아닙니까. '이 말은 누구에게도 발설치 말 것이다.'
만공스님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경허 스님의 방으로 살며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인기척에 민감한 경허 스님이 먼저 소리친다.
“밖에 누가 와있으렷다.”“소승이옵니다.
손님이 오신 것 같다기에,”
“내 그러지 않아도 부르려던 참이었다. 가까이 오너라.”
“예, 차라도 끓여 올릴까요?” “차는 필요 없고, 빨리 저녁상을 봐야 할 것이니라.”
“알겠습니다. 스님 “
그리고 내가 미리 일러둘 것이 있으니 명심해서 어김이 없어야 할 것이니라.”
“분부만 내리십시오.”“내가 따로 허락하기 전에는 내 방에 들어오지 말 것이
며 방문 앞에서 기웃거리지도 말 것이며, 방안에서 하는 이야기를 엿듣지도 말아야 할
것이니라.”“스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오늘 공양이 준비되었거든 방문 앞에 놓고 돌아갈 것이요,매일 아침상은 겸상으로 차
려서 가져와야 할 것이니라.”“하오면 스님, 손님께서는 오늘 밤 여기서 묵고 가시게 되
옵니까?”“그러기에 아침 공양을 준비하라 이르지 않았느냐?”“아,죄송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엄히 분부하는지 짐작을 하겠는가?”“그저 스님 분부대로 지키기만 하
겠습니다.”“내 방에는 지금 젊은 여자가 손님으로 와있느니라. 그리 알고 내가 이른대로
어김없이 시행해야 할 것이니라, 알겠느냐?”
제자 만공스님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아~~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이 여자를 방에 들여놓고 여러 날이 지나자 절 식구들
이 모두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인자라 마침내 이 사실을 주지 스님
까지 아시게 되고 크게 노하였다. “잘 하는 짓들이구나!! 기왕이면 호서일대에 소문을
쫙 퍼뜨리지, 그랬느냐, 경허 스님이 망령이 들어 계율을 어기고 여색을 탐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런 가운데 열흘이 지나자 제자들도 도저히 더 이상 두고 볼수 없다고 모두 일어나 분기
하기에 이르렀다. 경허 스님 큰 일이 났습니다. 사미승이 달려와 애원하듯 경허 스님을
부른다. “왜 그러느냐?”“큰일 났습니다. 모두 몰려오고 있습니다.스님 방 안에 있는 여자
를 내쫓지 않으면 스님까지 내쫓겠다고 합니다. “여자를 내치지 않으면 날 내쫓겠다고?”
경허스님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절 식구들 모두가 몰려오고 있었다.
제자 스님 만공이 간곡하게 청한다. “
스님 제발 부탁이오니 이제 그만 여자를 밖으로 내치십시오.”“그래, 내치지 않겠다면 날
이 절에서 내쫓겠다.?” “그러하옵니다. 스님.”어느새 몰려든 제자들 중 한 명이 경허 스
님에게 따지듯 추궁하자 두 눈을 지그시 감은 경허스님은 제자들 앞에 우두거니 서서 아
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방 안에 있던 그 여인이 밖으로 나오자 “응~ 바로 이 여
자였구만, 혀를 차며 모두 웅성거린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스님 방에서 열흘 넘게 신세를 진 바로 그 여자이옵니다.
그러자. 경허 스님은 그 여자를 바라보며“내가 지은 복이 이것밖에 되질 않으니 면목 없
소이다.” “아니옵니다. 스님! 제가 열흘 동안 스님께 입은 은혜는 제 평생을 갚는다 해도
다 갚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경허 스님은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툇마루에 서 있던 여인은 머리에서부터 덮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보자기를 벗겨 내렸다.
그 순간, 앗차! 그 여자의 문드러진 코와 이지러진 눈썹이며 짓무른 살은 형체를 분간키
어려웠으며 손가락도 다 뭉그러져 있었다. 나병 말기 환자였던 것이다. 여자의 곁은 심
한 악취로 인해 아무도 다가 갈 수 없었다.
“스님 저세상에 가서라도 이 큰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며 천장사를 떠난 뒤 제자들은 경허스님 방문 앞에서 무릎
을 꿇었습니다. 제자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드디어 방문이 열리고 경허 스님이 밖으로 나온다. 한 손에는 주장자(拄杖子지팡이),등에
는 걸망 하나 걸머진 모습이었다.
스님 떠나시면 아니 되옵니다. 저희들이 미망에 사로잡혀 잘못했사오니 저희들을 죽여주
시옵소서. 애처롭데 땅바닥에 무릎 꿇고 비는 제자들의 회한도 스님의 발거름을 돌릴 수
는 없었다. 진짜 중 경허 스님은 이렇게 천장사를 떠났다. 그리고 진짜 중이셨던 경허 스님
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셨다. 오늘날 경허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아쉽게 그리워진다.
진짜 중, 진짜 목사가 없다. 예수나 석가는 분명 있었지만, 지금 석가나 예수 같은 지도자
는 없기에 올리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