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마음 <시인 김현승>
80을 넘긴 부부라도 자식을 바라보는 처지가 달라 다툼이 생길 수 있다.
여자의 모성 본능은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그걸 깜박하는 바람에 집안 분위가 엄동설한이 되었다.
김현승의 시 <아버지 마음>을 떠올려 보며 위안을 삼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아버지만이 알 것이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어버지의,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이 세상의 아버지들도 자식들을 위해 좋은 것들은 다 주고 싶고, 자식들을 위해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억울 한 일이 생기면 대신 싸워주는 든든한 버팀목
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란다.
그렇다고 부모의 마음에 항상 위대한 사랑의 감정만 있겠는가.
때로는 사랑과 미움이라는 양면성을 가질 때도 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위니 코트의 말을 빌리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아이는 엄마의 사생활을 방해한다.
*아이는 엄마를 마치 하녀나 노예처럼 취급한다.
*아이는 뭔가가 필요할 땐 엄마를 사랑하지만 일단 원하는 것 을 손에 넣고
나면 귤껍질처럼 엄마를 던져 버린다.
이런 경우처럼 구는 아이가 얄밉지 않다면, 그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아이를 귀찮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발견하면
불안해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이 비열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는 것이다.
부모라고 항상 아이들에게 옳은 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잘못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틀릴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항상 틀리
기 쉬운 인간에 의해 길러지는 존재 아닌가.
좋은 부모란 아이의 필요를 위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충족시켜주는 부모가 아니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 결핍과 좌절을 경험해야 한다.
결핍되고 상실한 것을, 스스로 찾아 메우려는 노력이 바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
아닌가.
부모가 모든 것을 다 충족시켜주면 아이는 성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어도 부모의 통제 안에 있을 수는 없다.
집 밖의 세계에서 예상하지 못할 일이 아이에게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사고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줄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았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내 생각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