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싶거든 비워라.

노자의 도덕경에 “​당무유용(當無有用)”이라는 글이 있다.

흙을 반죽해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은 그 속이 비어 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

이 생긴다는 말이다. 찻잔 한 개를 고를 때에도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모양, 색깔, 무늬에

한정되어 있을 뿐 그 비어있음에 생각이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는 뜻이다.

잔은 채울 때 보다 비울 때가 더 아름답다. 빔의 공간의 여유를 느껴보자.

그것이 술이라도 좋고, 마음이라도 좋다.

일이 뜻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 무언가에 자꾸만 집착이 갈 때, 삶이 허무하고 불안하여

믿음이 가지 않을 때도 우리는 마음을 비워 여유를 가져야 한다. 조급함과 집착을 놓아야

삶이 편안해진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들이 들어설 수가 없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는 이치로 과욕을 삼가라는 가르침아닌가.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일본의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생전에 지방 출장을 갔을 때의 일화다.

그 지역에 뛰어난 노승이 있다하여 배움을 얻고자 스님을 찾아갔다.

인사를 마친 후 노승은 준비된 찻잔에 차를 따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차가 흘러넘쳐 상이 물바다가 되어가는 데도 스님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마쓰시타가 노승에게 묻는다.

“스님 찻잔이 이미 넘치고 있는데 어찌 계속 따르십니까?”

그러자 노승이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 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미 가득 찼는데 뭐 하러 계속 따르는 걸까요?”

답을 들은 마쓰시타는 당황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귀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승은 어째서 넘치는 잔에 차를 계속 따랐을까?

마쓰시타는 왜 귀한 가르침이라고 한 걸까?

노승은 이미 가득 차 넘쳐흐르는 찻잔을 통해 마쓰시타를 깨우친 것이다.

더 큰 채움을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

잔이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쓸모가 생겨나듯이 비우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완성하

는 길이다.

노자는 이런 말을 했다.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지만,

도(道)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비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 많이, 더 많이’의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리석게도 넘쳐흐르는 찻잔을 바라보면서도

계속 차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