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물어보고 들어봐야 한다.
리컬러스 에플리의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읽는다.
6년 이상 함께 산 부부가 상대를 타인보다 더 잘 알까?
상대에 대한 자신의 짐작이 맞을거 라고 생각하는 비율과 실제 맞힌 비율 사이의
차이는 모르는 사이보다 훨씬 컸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상대의 자존감에 대한 질문 10개 중 8개는 맞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맞힌 건
10개 중 4개뿐이었다. 처음 본 사람들은 적어도 서로 알지 못한다는 전제라도 까
는데 부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네 마음은 내 손금 보듯 한다.’고 더 많이 착각한
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상대의 마음을 척하면 알 수 있다는 과도한 확신을 버
리고 ‘물어보고, 들어 보라.’고 말한다.
그렇지 못해서 연인도 부부도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던가.
타인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은 이렇게 다양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걸 극복하려면 혼자서 추측하지 말고 바로 솔직하게 물어야 한다.
잘 알고 있다. 고 지레짐작으로 내가 알아서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모르면 물어보고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고 상황을 이해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묻지도 않고“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라고 내가 판단을 내려 행동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
많은 연구 결과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타인에게 묻는 것이 훨씬 더 용기 있는 행
동이고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아무리 싫은 사람도 막상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에 대해 좋아질 수 있다.
나랑 너무 안 맞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우도 상대방과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
아서 그렇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면 상대방도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친절히 대한다.
그러니 절대로‘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내 마음도 읽을 수 있다는 헛된 망상’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오해와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한다.
날마다 죽어야 할 사람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다.는 말이다.
나 없는 이 땅에 참 평화가 있고 사랑이 있다.
나 있고는 화평도 사랑도 없다는 말 아닌가.
나를 죽이는 십자가 없는 곳에 면류관은 없다. 는 것이다. 예수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고 말한다. 사람이 제 목숨을 구하고 자 하면 잃을 것이요, 목숨을 잃고자 하면 얻
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자신을 버림으로써 얻는다는 것이니 분명 역설이다.
그러나 이 역설이야 말로 영원한 진리 아닌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더 큰 고통을 언제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
진실로 화평과 사랑을 원한다면 나를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