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자실지(執者失之)
”집자실지(執者失之)“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끊임없이 잡으려고만 하는
자는 그것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세상 만물은 어김없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
춘하추동이 그렇고 생노병사가 그렇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연법칙을 어기고 고통을 당하는 일과 자연법칙에 따라 살
며 즐거움을 얻는 일이 전부다. 꿈을 꾸는 것은 희망이지만, 숯덩어리가 금덩어리가
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욕망이다. 좋은 장소에 알맞은 시기에 좋은 씨앗을 뿌리고
때때로 가꾸지 않고 풍년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노자는 <도덕경 >을 통하여
자연의 법칙을 바꾸겠다는 그런 교만을 버리라고 준엄하게 경고했다.
천하는 자연의 그릇이므로 맘대로 할 수 없다고,
맘대로 하려고 하면 실패하고, 잡으려고 하면 놓친다. 욕망이 너무 크면 자신의 본성
을 잃어버리기 쉽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못하면 마지막은 비
극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억지를 부리지 않았고 사치하지도 안했고 교
만하지도 안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로 만든 대한민국이다.
근대화 초기 산업사회에서 그랬다.
그런데 그게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제는 ‘하면 된다.’가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때가 왔다.
최근에 정치판을 봐라.
미투(me too)가 어떤가.
어렵사리 성공한 정치인들이 초심을 잃고 여색을 탐하다가 추락한 사례는 이루 셀 수
가 없다. 욕망의 불길은 탈수록 더 거세져 결국 자신을 태워버리고 만다.
모두가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들이다.
이때 재앙은 쾌락의 이자다.
세상에 후회를 치료하는 약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
<시경>에
“하늘이 내리는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하지 못한다.
고 했다. 한 사람이 치욕스러운 모욕을 당하거나, 한 집안이 무너지는 것도 그 일차적
원인은 자기에게 달려있다고 봐야 옳은 것 아닌가.
인내와 절제는 고통을 수반한다.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어 내지 못하면 어찌 매화의 향을 맡을 수 있겠는가.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지 억지로 잡으려고만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