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관통하는 법칙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했다.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 는 말로 ‘뿌린 대로
거둔다. 인과응보(因果應報),자업자득(自業自得)’으로도 풀이 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위대한 정치가 철학자로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
은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타인을 사랑하라.”고 권유했다.
프랭클린이 펜실베니아주 의회 의원이었던 시절에 그를 유난히 괴롭히는
정적이 한 명 있었다. 그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으나 비위를 맞추고
싶지 않았던 프랭클린은 한 가지 꾀를 냈다.
어느 날 자신의 정적에게 매우 진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
다면서 그 책을 며칠 동안만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 정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희귀본의 가치를 알아본 프랭클린에게 즉시
책을 빌려준다. 그 책을 본 프랭클린은 며칠 뒤 감사 편지와 함께 책을 돌려
주었고 이후 두 사람은 평생 우정을 나누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는 에피소
드가 전해지고 있다.
프랭클린은 자서전에 이 사례를 들면서 “적이 당신을 한 번 돕게 되면, 더욱
당신을 돕고 싶어하게 된다.” 고 말 한다. 이렇게 적을 친구로도 만들 수 있
다 하여 <프랭클린 효과>라는 용어가 지금도 유래하고 있다.
<지음知音>이란, 소리를 알아 듣는다.
는 말로, 자기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즉 마음이 서로 통하는 절친한 친구
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
으니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백아(伯牙)의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처럼 내가 가진 가치를 누군가가 알아주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프랭클린은 정적을 제거 하고자 하는 대신 화해하고 싶었다.
정적은 자신의 결을 알아 준 프랭클린에 기쁨을 느낀 것이다.
이렇게 프랭클린은 세련된 방식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고 정적은 기꺼이 손을
잡는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진심이 통해서로의 소리를 알아본 것 아닌가.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슬기로운 법칙을 나는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콩 한 쪽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자랐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정말로 배고픈 보리고개 시절이었다.
친구와 둘이서 자취를 하면서 하루씩 취사를 담당하는데 밥을 퍼 놓은 밥그릇
이 똑같은데도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친구 앞에 있는 밥그릇이 커 보인다.
이걸 눈치챈 우리는 서로 밥그릇을 바꿔 먹던 시절을 보내며 공부했다.
그 후 세월이 지나고 그 친구는 시골에서 논농사를 지으며 가을 추수가 끝나면
쌀 한 가마씩을 삼십 년 넘게 나에게 보내면서 배불리 먹자고 한다.
내가 즐겨 읽고 좋아하는 구약 성경 구절(창세기13:9절)이 있다.
“네가 먼저 우하면, 내가 좌 할 것이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 할것이다.”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 사이의 재산분활 이야기다.
목축업을 하던 그들이 모은 재산이 부족했을 때에는 참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재산이 늘어나면서 갈등이 생기자, 갈라서기로 결정을 한다.
아브라함이 재산을 반으로 가라 놓는다. 나누기란 공평하기가 어렵다.
갈라놓은 것을 누가 먼저 선택할 것인가? 는 예나 지금이나 민감하다.
잘못하다 가는 관계가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내민다. “네가 먼저 우하면 후에 내가 좌 할 것이다.”
조카인 롯은 물이 풍부한 비옥한 땅을 먼저 차지 한다.
우리도 살다 보면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이 충돌할 때가 생긴다.
그로 인해 상대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이 소용돌이 치는 순간을 반드시 맞게
된다. 그럴 때 ‘그까짓 손해 좀 보고 살아도 좋다’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조카 롯이 선택한 땅은 후에 불바다로 변하고 가족 해체라는 비극을
맞게 되지만, 보이는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던 아브라함은 무한
한 축복을 받는다. 언젠가는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너무 집착한다.
그러면 선을 쌓을 수 없다.
보이는 것들은 사라지는 법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인생을 관통하는 법칙은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에게 조용히 스며드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