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도 맞고 당신 말도 맞다. 는 뜻 아닌가. 일전에 고스톱을 하다 게임의 룰 땜에
시비가 벌어졌다. 순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우화가 떠올랐다.
*코끼리 코를 만진 장님은‘ 길다’고 한다.
*코끼리 배를 만진 장님은 ‘벽과 같다’고 한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장님은 ‘기둥’ 같다고 한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다 맞는 말이다.
입장(立場)이란 내가 서 있는 자리다.
누구나 자기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시비가 그치지 않는다.
신라 시대 원효 대사는“皆是개시”즉 모두가 옳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코끼리라는 전체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그는 “皆非개비” 즉 모두 틀렸다고 말한다.
대사는 우리 모두 이 장님들처럼 부분적 진리만 알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극심한 불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당신도 맞고 나도 맞다.
는 皆是皆非개시개비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자기가 만진 것만이 코끼리라고 우기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옳으면 당신도 옳고, 당신이 그르면 나도 그르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그래야
갈등이 해소되고 평화가 가능해진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
로는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 나의 판단을 잠시 접고 상대의 처지를 떠올려야 이해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2500년 전 중국의 사상가 장자는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를 수 없고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릴 수 없는 것처럼 학은 학대로 오리는 오리대로 서로 다름을 받아들여야 갈등을 해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서로 다름이 어울려야 선하고 아름다운 것 아닌가.
요산요수(樂山樂水)!! 산과 물은 서로 다르지만, 다투지 않고 함께 있으니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생각의 차이 때문에 서로를 원수처럼 물고 뜯는 사람들이라면 皆是皆非개시개비를
묵상했으면 좋겠다. 갈등의 해법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시비가 평화를 우선할 수 없다고
했다. 평화를 위한다면 시비를 짐시 내려 놓아야 한다.
원효와 의쌍 대사가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함께 떠날 때 몇 날을 걸어 충청도 직산 지방에
이르러, 어두워져서 동굴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잠결에 목이 말라 원효는 해골 물을 마시
고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제 밤이나 오늘이나 똑같은데, 어제는 달고
오늘은 구역질이 나는가?"
어제와 오늘 사이에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일 뿐'이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설파했
다. 그러니 옳고 그름은 결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 . '분열보다 통합'을
내세워 대중불교에 앞장섰다.
의상과 달리 원효는 깨달음을 해골 물에서 얻어, 경주로 돌아와 자신의 깨달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으며 일생 동안 150여 권의 책을 세상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