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할까! 어찌할까! 라는 말로 불가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 뭣고!!,(시심마是甚摩), 영어로는 why (왜)이다.
<논어> 위정편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여지하, 여지하, 어찌할까,
어찌할꼬. 스스로 말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찌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나를 알려주었는데 셋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찌하겠는가?
스스로 방법을 찾아보려고 궁리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는 애타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을 도울 수가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사람은 기댈 곳이 있으면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
‘소도 어덕이 있어야 비빌 수 있다’ 는 말은 핑계일 뿐 자기 합리화다.
여지하 정신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여지하 정신이 있다면
남을 탓 하거나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 여지하 정신으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한 두 사람이 있다.
중국 농촌 마을에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던 50대 두 남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3살 때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었고 또 한 삶은 39세에 폭발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서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나의 눈이고,
나는 그의 팔이었다. 이 두 사람은 13년 동안 척박한 바위산 기슭에 하
루도 거스르지 않고 몇 그루씩 나무와 꽃을 심어 울창한 숲을 일궈 냈다.
나무를 심기 위해 팔을 잃은 친구가 시력을 잃은 친구를 업고 개울 물
을 건넌다. 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가. 모든 것이 쉬운 것이 없
다는 이 두 사람이 항상 하는 말은 “방법은 고난보다 많다”이다.
어떤 일이고 쉽게 이뤄지는 방법은 없다. 그러기에 칠전팔기(七顚八起)
라 하지 않던가.
여기서 우리는 맹자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그 이유는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고난이야말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마음을 넓히고 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