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에 대한 나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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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가까운 형제로부터 나를 분노케 하는 말 때문에 상처를 받고 집에
돌아와서도 심리적 충격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책장에서 오래전에 읽었
던 빅터 플랠클의 소설 <죽음의 수용소>를 뽑아 들고 밑줄 친 부분을 찾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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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플랭클은 독일의 나치 수용소에서 인간으로
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숨 막히는 작은 감방에서 발가벗겨진 채로
갇혀 있게 되었을 때, 나치들도 빼앗을 수 없는 인간이 가진 마지막 자유가
있음을 플랭클은 자각한다. 나치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어떤 심한 고통을
줄지라도 그 자극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안 받고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
택의 자유가 있다는 내용을 쓴 소설 <죽음의 나치 수용소>를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글
귀에 나는 밑줄을 치며 <맞아!!>라고 무릎을 쳤던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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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 그 공간, 틈새에서 상대방의 말과 행동은 바꿀 수 없
지만, 나의 반응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는데, 그 자유와 힘을 상실한 채 심한
충격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었을까?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자극에 어떤 반응
을 보일 것인지 선택하는 것도 나이고 내 인생을 바꾸어 가야 할 사람도 그 누
구도 아닌 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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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친구들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
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유관순을 비롯한 수 많은 독립투사들이 겪었던 잔혹한
참상들을 보면서도 나는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이라는 빅터 플랭클 글이 떠
올랐다. 그 공간에서 독립투사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는 나라의 ‘자주독립과 자유
!!’가 아니 었던가. 친구들은 다음 모임은 ‘천안독립기념관’에서 보자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