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리코너 장인수 선생 노량진 대성학원 입시 전문학원에서 강사로 퇴직후 1만여권의 책을읽고 주옥같은 내용 을 선별하여 진서리 코너에 게제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꿈 자식에게 읽게 하십시요
  • 조급함과 실수는 비례한다.
  • 2022-03-21
진서리
      조급함과 실수는 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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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해도 조급하게 해내는 일은 실수가 다반사다.


노자에 도무수유(道無水有)’란 글이 나온다.  ()는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물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집중할 뿐 근본을 잊고 산다.


찻잔 하나를 고르는데도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모양, 색깔, 무늬에 한정되어


있을 뿐 그 안이 비어있음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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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을 반죽해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은 그 속이 비어 있음으로 해서 쓰임이


생긴다는 것을 노자는 당무유용(當無有用)‘ 이라 했다. 채워져 있는 찻잔보다


비워져 있는 찻잔이 더 아름답다. 그것이 술이라도 좋고마음이라도 좋다.


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꾸만 집착이 갈 때삶이 허무하고 불안하여 믿음이


가지 않을 때, 우리는 마음을 비우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삶이 편해진다.


자기를 비워냄이 없이 채울 것도 없다는 게 불교 사상이다비우지 않고는 새로


운 것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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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일본의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생전에 지방 출장을 갔을


때의 일화다. 그 지역에  뛰어난 노승이 있다 하여  배움을 얻고자 스님을 찾아


갔다. 인사를 마친 후 노승은 준비된 찻잔에 차를 따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


차가 흘러넘쳐 상이 물바다가 되어가는 데도 스님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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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마쓰시타가 노승에게 묻는다.


     “스님 찻잔이 이미 넘치고 있는데 어찌 계속 따르십니까?”


      그러자 노승이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 한다.


     “러게 말입니다. 이미 가득 찼는데 뭐 하러 계속 따르는 걸까요?”


      답을 들은 마쓰시타는 당황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귀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승은 어째서 넘치는 잔에 차를 계속 따랐을까?


       마쓰시타는 왜 귀한 가르침이라고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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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은 이미 가득 차 넘쳐흐르는 찻잔을 통해 마쓰시타를 깨우치게 한 것이다.


더 큰 채움을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것을, 잔이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문에 쓸모가 생겨나듯이 비우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완성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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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지만, ()의 길은 하루하루


비워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비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


. ‘더 많이,  더 많이의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리석게도 넘쳐흐르는


찻잔을 바라보면서도 계속 차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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