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야 할 목적이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도 삶을 살아낸다.
일제강점기 때 징용에 끌려가 강제 노역 끝에 만신창이가 된 최규동 씨는
1945년 해방을 맞아 고향인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면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예전에 살던 집은 사라졌고, 흩어진 가족들을 찾을 길이 없었다.
가족을 만나려던 희망마저 물거품이 되었고, 병든 몸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버티며 지내던 그는 끝내 자살을 결심하고 무극천(無極川)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죽을 결심을 하고 찾아간 무극천 다리 밑에는 거동조차 할 수 없는 걸인들
여럿이 거적을 치고 누어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힘없는 목소리로 “여보시오, 당신은 걸을 수 있군요,
우리는 걸어 다닐 수가 없어요,
배고픈 우리를 위해 밥 좀 얻어다 주시구려”하며 호소를 해왔다.
차마 거역할 수 없는 호소에 그는 여기저기 다니며 밥을 얻어다 걸인들을 살려 내야 했다.
자살을 결심했을 때 그의 삶에는 목적함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얻어먹을 수 있는 능력
만 있어도 그것은 은총’이라는 진리를 깨달았고, 걸을 수조차 없는 걸인들을 위해 밥을 얻
어다 먹이는 것이 마침내 삶의 목적함수가 되었다
최규동 씨는 자신이 보살피던 걸인이 죽으면 산비탈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고, 새로운
걸인이 들어오면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이렇게 헌신적인 삶을 30여 년간 이어오던 중
1976년 카톨릭 무극성당에 부임해온 오웅진 신부를 만나 카토릭 성당에 입문했다.
이후 1986년에는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실천으로 한국 카토릭 사랑 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는 받은 상금을 오갈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해 모두 내놓았으며, 그의 감동적인
삶이 알려지면서 사회 각계에서 들어온 성금 12억 원으로 오갈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한 요
양원을 건립했다.
1919년 최규동 씨는 영면하여 충청북도 음성의 꽃동네 입구에 묻혔고 사회 각계에서 들
어온 조의금으로 비석과 동상도 세워졌다. 그는 무극천 다리 밑에서 만난 걸인들의 하소
연을 무시해버리지 않고 받아들여서 삶의 목적함수를 정립한 이후 거룩한 삶을 살기 시작
한 것이다. 살아야 할 목적이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도 삶을 살아 낸다 . 삶의 목적함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인생 성패를 좌우한다.
사람은 어제 뿌린 씨앗으로 오늘을 살고, 오늘 심은 나무에서 내일의 열매를 거두는 법이
다. 나를 도와줄 사람의 숫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