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리코너 장인수 선생 노량진 대성학원 입시 전문학원에서 강사로 퇴직후 1만여권의 책을읽고 주옥같은 내용 을 선별하여 진서리 코너에 게제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꿈 자식에게 읽게 하십시요
  • ‘이 뭣고’(是甚麽시심마)
  • 2022-03-17
진서리



    


                ‘이 뭣고(是甚麽시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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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전남 장성 백양사 뒤에 있는  백암산 정상 상왕봉(742m)


오르는 길. 백양사 종무소 뒷 편에 우뚝 솟은 하얀 비석에 이뭣고라는


是甚麽(시심마)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뭣고는 불가의 수행법으로 부


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가는 지름길이자 참된 불자로 살아가는 길이라


는 것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깨달음이 없이 불교가 있을 수 없


. 마음을  깨닫는 자가 곧 부처라 하지 않던가  그 깨달음의 시작이


 이 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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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가 경상도 말이라면 전라도 말로는  머시다야이고  영어로는


why 이고, 한자로는 是甚麽시심마,. 일종의 의심이고 질문이다. 불가에


서는 모르는 것을 알고자 탐구하는 것이 바로 ()이며 곧  반야바라


(般若波羅蜜)임을 알아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말한다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월산 스님은 만공스님의 문하에서 이뭣고화두를 받고


20년 동안 치열하게 정진했던 날들이 차곡 착곡 쌓였기에 인생의 전환점


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술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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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뭣고란 일상에서 어떤 일에 의심이 생기면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집


중적으로 파고들어 그 뜻을 깨우치고 통달하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업장소멸에 이르는 수행법이고무명에서 벗어나는 수행법이며,  지혜롭


살 수 있는 수행법이라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칼날 같은 법문은 조사도


부처도 뛰어넘으라는 말 아닌가. 제자란 나를 밟고 뛰어넘는 놈이지 나보


다  못한 놈을 어찌 제자라 할 수 있겠는가스승을 뛰어넘어야  제자다운


제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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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산 상왕봉까지 오르면서 이뭣고의 화두를 짊어지고 생각하고 또 생각


하며 정상을 향해 걷는다. 삶의 고통은 피해 가는 게 아니다. 정면에서 맞서


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두드릴수록 쇠는 더 강해지고 보리밭은 밟힐수록 더


영글어지는 법, 아닌가. 인적이 드문 백암산 산행은 스스로 선택한 고독이다.


산은 비어있는데 그 안은 충만하다. 산은 내 삶의 마중물 아닌가. 몸은 기진


맥진해도 마음은 즐겁다. 산속에서 나는 초라해지지 않는다.가난하지도 않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히브리대학의 유발 하라리의 책 <호모 사피엔스>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동물과 구별되는 사유하고 또  사유하는   인간만이 승자로


살 수 있다는 논리를 펴서 세계적인  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고 말하기도 했고,


세계적인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다시 생각하기(think again)”지금보


다 더 절실한 때는 없다고 말하며 사납게 요동치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은 알고 있는 것조차도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아는 것이 힘이라면 모른다. 는 것을 아는 것


이야말로 커다란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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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뭣고라는 질문을 통해 생각하기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자신의 삶을 개선


하고 나날이 새롭게 되기를 바란다. 세계적인 부호 빌 게이츠는 생각하기 주


을 설정했으며 애플의 고 스티브 잡스는 다르게 생각하기를 통해 창조


적인 인물이 되기도 했다. 공자는 가장 어리석은 자만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고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으며 철학자 베이컨은


아는 게 힘이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  이뭣고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예수는 사유를 통해 깨달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다. 고 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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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그때가 바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임을 알아


차려야 한다. 익숙함의 감옥에서 탈출하자의심이 가져다주는 이득을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다시 생각하기(think agine)를 너무 소홀히 한다.


 아니 싫어한다. 하지만 이뭣고만이 우리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바꿀 것


이다. 라고 나는 확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