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곡(思母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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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울 엄마 돌아 가신지 22주기다. 2000년 음력 2월 12일 새벽에 세상을 떠나셨다. 변산반도 작당 마을에서 태어나시고 87세로 다시 작당 마을 앞바다로 돌아가셨다.
화장을 한 뒤에 뼈가루를 작당마을 바다에 뿌렸으니 해양장인 셈이다.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유아기 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으니 아버지가 마을 동냥 젖을 얻어다 먹이고 키우셨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바다로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던 작당마을 앞바다는 87년의 어머니 평생 마음의 고향이었다. 울 엄마는 생전에 나 죽거든 화장해서 앞마을 바다에 뿌려 달라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나는 지켰는데 그때는 가까운 친척들도 이웃들도 비난이 그치지 않았다. 지금은 화장률이 95%를 넘고 최근에는 오미크론이 확산되면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아 장례를 4~6일장, 서울에서 태백까지 타지역 화장장 찾아 3만리 라는 말이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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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제들은 부모님 기일이 되면 선조들의 수목장에 모인다.
손수 만든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형제도 있고 기독교 신자인 형제들은 묵념으로 추도를 마치면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음복을 한다. 그리고는 그냥 헤어지기 싫어 다시 형제 집에 모여 화투 놀이도 하고 장만해놓은 음식을 먹으며 형제들 간에 우애를 다진다. 그런데 어머니 기일만 되면 가슴 아픈 상처가 되살아난다. 아버지는 울 엄마를 왜 그리도 미워했는지 알 수 없다. 맞고 도망치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미어질 듯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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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시험에 자주 나온다는 작사 미상의 고려가요 <思母曲>이 생각난다. 현대어로 해설해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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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도 날이 있지마는
낫처럼 잘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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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어버이시지마는
어머니 같이 나를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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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말씀 하지 마시오. 사람들이여
어머니 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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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이라는 동요도 생각난다. 한인현 작사 이홍렬 작곡 초딩 4학년 교과서에 실린 동요다.
1절
아이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2절
아기는 곤히 잠을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에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구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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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요다. 엄마들에게는 자장가 대용으로 사랑받는 노래다. 아이들은 이 노래만 불러주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도 스스로 잠이 든다. 그런데 이 노래1절만 부르면 안 된다. 시인의 마음이 2절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절에는 굴을 따러 섬 그늘로 나간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엄마는 계속 굴만 따고 있고, 아기는 집에서 잠만 자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엄마와 아이의 상봉이 있어야 하지 한다. 그래서 2절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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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그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걸어서도 될 것을 달려간다고 하지 않는가. 고마우신 울 엄마, 그리고 사랑스런 우리 아기, 그 둘 사이에 우리들이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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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면 그냥 그대로 한 사람의 여자가 아니다. 구군가의 엄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엄마가 아니었을 때는 자기한테 자기가 함부로 할 수도 있다. 남자도 아버지가 되었다면 마찬가지 아닌가. 왜 그런가? 2절까지 부르지 못한 엄마들이 아기를 두고 집을 나가 돌아 오지 않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엄마가 세상에 제일 나뿐 엄마다.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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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그냥 여자, 그냥 남자가 아니다. 누구가의 엄마이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한테 함부로 살지 말아야 한다. 아무렇게나 살아선 안 된다.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자기를 보다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자기는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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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 한테 엄마를 아버지를 빼앗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가장 나뿐 일이고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무서운 죄악이다. 보편적으로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성과 모성성을 동시에 갖추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는 남성성만
갖추고 태어난다. 그래서 남성의 사랑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랑에 머물고 만다. 부성성(아버지의 성품)까지 터득하는 남자는 실로 흔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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