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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똑같은 날은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입니다. 90을 넘긴 누나는 아들딸이 있는데도
곤란한 일(병원진료)이 생기면 나를 부릅니다. 그게 편하답니다. 그럴 때마다 아직
은 내가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볍게 ‘콜’합니다. 피할 수 없거든 즐기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누나가 80대 초에 허리 수술을 할 때도, 80대 중반에 관절 수술을 할 때도 내가
함께했습니다. 91세가 되었는데 코 안에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어 수술을 해야 한
답니다. 수술 전에 거처야 할 진료절차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가는데 마다 번호
표를 뽑고 수납을 해야 하고, 옷가지 짐을 챙겨서 이동합니다.
60대 나의 ‘버킷리스트’에 40 여일 간의 산티아고 순례길이었 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접었습니다. 누가 볼까 봐 돌아서서 혼자서 웃습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
디로 가는지 몰라 애가 탑니다. 막연하게 ‘죽으러 가는 게지’ 한 줌 흙으로 돌아가
는 것 아니여. 합니다. 지금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삽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좋아하는 일 해라’는 식의 무의미한 말을 접은 지가 오래 되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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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출구전략이 수정되고 바뀌는 시점이 되어서야 젊어서 보지 못한 것들이 보
이고, 느끼며, 생각하는 게 많아졌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날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참으로 어렵슴니다. 죽음이란 곳을 향해 가고 있는 삶의 여정 위에서 누구나
가는 이 길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조용히 가려면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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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하나는 대장암이라는 천청병력의 진단을 받고 3년을 죽음이라는 공포와 싸우
다 죽었고, 어떤 친구는 아들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자발적 호흡이 없는 식물상태
로 중환자실에 누어있고 회복이 되어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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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닥칠 수 있는 불행 앞에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답이 없는
물음만 계속됩니다. 죽음이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누구나 결
국 혼자 떠나는 여행길이 인생입니다. 누굴 위한 삶도 아니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여행길입니다. “잔치집 가는 것보다 상가집 가는 게 낫다”라는 성경 구
절이 절절히 다가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
미에서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삶의 매 순간을 산
다면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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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포에 떠는 암 환자로 떠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자식을 보고도 ‘뉘시오’ 인
지하지 못하는 치매 노인으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마지막 장면을 기억한
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남은 날들을 맞이해야 할지 생각
이 퍽 쉬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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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는 불안하면 엄마 품속을 파고 듭니다.
파란 숲이 우거진 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가고픈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