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지인에게서도 돈을 빌리고 형제에게서도 돈을 빌려 쓰다가
형편이 나아지면서 일부라도 갚기로 했다. 어느 쪽부터 갚아야 할까? 대게
는 형제니까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지인의 것을 먼저 갚게
된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신뢰가 쌓여야 한다. 어느
날 손녀를 길에서 만났다. 할아버지 급하게 살 것이 있는데 4천원만 빌려주
세요. 잔돈이 없어 만 원짜리 한 장 주면서 나머지는 곧장 가져오라고 했는
데 감감 무소식이다. 야속할 수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확실한 경제관념을 심
어주기위해 빨리 가져오라고 독촉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당신은 친한 친구에게 얼마나 돈을 빌려줄 수 있는가. 친구간의 돈 거래는
어느 순간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채권자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채무
자의 관계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돈 잃고 친구 잃는다. 그래서 절친한
사이에는 돈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적인 부자 워렌 버핏의 막내아들 피터는 작곡가이자 가수다. 그가 첫
앨범을 낸 뒤 작업실을 옮기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
하자 버핏은 부자관계는 깔끔해야하는데 돈이 개입하면 복잡해진다. 고 단
칼에 거절했다. 결국 피터는 은행대출로 이사비용을 마련해야했다. 19991년
인터뷰에서 피터는 당시는 섭섭했지만 그 덕분에 은행과 관련 된 일을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지금도 모르는 게 수두룩했
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자식들에게 ‘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다.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면 돈을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말아야 한다.
빌려준다면 얼마나 빌려줄 수 있는지 고민하기 전에 빌려주고 나서 못 받아도
타격을 받지 않을 액수가 얼마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돈을 돌려받지 못할 각오
를 하고 줘야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거의 없다. 돈이 없으면 우선
생존이 불가능해지고, 돈이 있어야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
은 남의 인생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돈 자체가 우리 인생에 미치
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 돈 앞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간사해지고 비굴해질 수 있
는지, 돈이 없으면 얼마나 서러운지 겪어봤는가.^^^
어느 자산관리자의 연구 논문에 의하면 한 자녀를 키우고 가르치기 위해 3억이
들고, 은퇴해서 부부가 사는 데는 4억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가진 돈은 한 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럴수록 돈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돈이 있든 없든 내가 어떤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돈에 끌려다
니지 않을 수 있다. 3억이 들어도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고 싶은 사람이 있고 4억이
없어도 행복한 부부가 있다. 100억을 가지고도 불행한 부부가 있다. 돈에 휘둘리
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쓰는 돈은 내가 벌어서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 의존해서 살면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채 그 사람의 뜻에 맞춰 살게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 신세를 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자녀라고 할지라도 재산을 몽땅 내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잘 못
되면 자식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이 우리를 돌보겠지 싶지만 자식은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 영국의 대 문호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아비가 누더기를 걸
치면 자식은 못 본 채 하지만, 아비가 돈 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은 모두 효자
다.” 내가 뭔가를 갖고 있을 때 지식과 내가 아무것도 없을 때 자식은 양과 이리처럼
사뭇 다르다. 자식은 내 핏줄이지만 때로는 가장 박덕한 적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
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