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봉도(生死逢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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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대둔산 건너편에 위치한 완주 천등산(707m)을 갔다. 내려오는 길에 폭우를 만났다. 깊은 계곡에 산행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내가 걷던 길은 갑자기 불어난 물로 산길이 아니고 물길이 되어버렸고 흙탕물이 작은 급류를 이루어 흐르는데 그저 물속을 질퍽거리며 돌계단을 하나하나 세며 조심스럽게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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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비로 몸을 무장했어도 온몸은 다 젖고 산속 숲은 비비람, 번개와 천둥소리로 요란한데 내 영혼은 온몸을 흔들어 춤추는 잎처럼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모든 나무가 들고 일어나 머리를 풀어헤치고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춤추는 듯했다. 나도 춤추듯 걸었다. 혼자서 걷는 우중 산행은 또 하나의 내 모습이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처럼 아름다운 것도 없지만 그것처럼 당황스러운 것도 드물지만 일단 젖고 보면 그것처럼 즐거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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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사봉도(生死逢道)”라 말이 떠 올랐다.
생과 사는 언제나 길 위에 있다는 뜻이니 속된말로 길바닥에서 생사를 만난다는 말 아닌가.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기분이 들었다. 내 마지막도 길이 아니고 산이라면 어떠하랴. 하기야 집에서 출생하거나 집에서 죽는 사람 없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다 병원에서 맞는다. 그리고 보니 생과 사가 다 길 위에서 만난다. 위대하기만 한 삶도, 시시하기만 한 삶도 없지만, 다만 뒷모습을 남기고 인생 마지막 그 길을 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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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女人)은 어릴 적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게 아름답지만, 남자의 얼굴은 살아온 인생이 담겨 있어야 아름다운 법이라는 했다. 비에 젖는 산행도 그것대로 한 모습이다. 힘차게 내려치는 폭포 앞에 쌓아 올린 탑 앞에서 부처님의 최초의 말씀(수타니파타)을 읊어 보면서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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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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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리움이 생긴다.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사랑과 그리움에 괴로움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부처는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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