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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가장 많이 봤다는 책 <주역(점서)>에 나오는 말로
사물이 극(極)에 이르면 반드시 반전(反轉)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극(極)이란 바닥을 가리키는 말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위로를 받은 말이 바로 <物極必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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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라면 “ 아 더 내려가자. 더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에너지를 축적한 다음 때가 되면 치고 올라가자.
반드시 때가 올 것이다” 어느 목욕탕 벽에 “사람은 다 때가 있다”
고 쓰여 있어서 혼자서 웃은 적이 있는데 왠지 그 목욕탕에 자주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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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게 닥친 불행이 이 세상 누구보다 큰 것 같아도 시간
이 지나면 조금씩 흐려지게 마련이다. 영원한 고통은 없는 것이다
오늘 편하면 내일은 아프다. 지금 해피 하면 언젠가 불행하다.
잔병이 길어도 골골 80이요. 건강하다가도 갑자기 큰 병이 온다.
돈이 없으면 자식 복이 있고, 자식이 없으면, 서방이 멋지다. 그러니
지금 너무 힘 든다고 좌절해서도 안 되고 잘 나간다고 우쭐대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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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스트불뤼테>라는 식물학적 용어가 있다.이는 “불안(공포)속에
피는 꽃”이라는 말로 모든 식물은 절제절명의 위기(불안)를 감지하는
순간 자신의 생애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는 것이다.
식물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꽃은 피우는 이유는 씨앗을 맺어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가기 위함이다. 소나무도 토양(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소나무일 수록 솔방울을 더 많이 달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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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식물은 한 번 뿌리를 내린 곳이 제 삶의 터전이자 무덤이다.
나무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묵묵히 운명을 받아
들이고 거기에 몸을 맞추어 살아갈 뿐이다. 바람이 세차면 바람이 덜
부는 쪽으로 가지를 뻗고 햇볕이 부족하면 햇살 쪽으로 몸을 비튼다.
뿌리를 내리다가 바위를 만나면 옆으로 틀어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찾아 부단히 노력하다가 절제절명의 위기의 순간
이 오면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앙스트블뤼테>......나무에게서 배우
는 삶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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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는 말로 설명한다.
이 말은 정착지 없이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늘 언제 어디서 잠
자야 할지 정착지 없는 불안감을 느꼈던 그들의 삶이 오늘 날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게 한 원동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창작을
일으킨 사람들은 <앙스트블뤼테>, <디아스포라> 로 설명이 가능하다.
베토벤은 청력이 완전히 상실한 시점에서 위대한 명곡을 작곡하기 시작
했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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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배부르고 등 따시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낯설고 불안함을 만났을 때, 위기감을 느낄 때 평상시와 다른 창작의 힘
을 얻는다. 아이가 잠들어있는 시골 집에 불이 나면 아이 엄마는 그 높은
담장을 쉽게도 뛰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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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벼랑(벽)에 세워야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법이다.
스스로를 위기 상황에 빠뜨리면 놀라운 문제 해결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서 있는 곳이 바뀌어야 보이는 풍경도 달라지는 법인데 우리는 무
의식적으로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이 세상 전부라고 착
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늘 눈 높이를 자주 바
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