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병력의 소식이 날라왔다. 푸른 하늘에 날벼락이라.
중학교때부터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밤사이에 죽었다.
전날에도 카톡을 주고받았는데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처음 책을 출간했을 때 100 만원을 들고 찾아와 축하
해준 친구였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서울 삼육병원 추모관
으로 문상을 서둘렀다. 딸만 셋을 키웠는데 두 딸은 카나다
에 살고 있어 나오지 못하고 막내딸 내외가 상주를 하고 있
다. 참으로 망연자실하다.
솔로몬 왕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게 헛되도다’라는 말을 실
감하게 한다.
이 친구 사람 사귀는 재주가 많아 인간관계가 넓은 마당발
이었다. 내 짐작으로는 친구 연한 명은 찾아올 줄 알았는데
정적이 감돌 만큼 썰렁하다.
세상 인심이 이렇게 야박할 수 있을까?
영국 옥스퍼드대 던바교수가 말하는 ‘던바의 수’ 150명이라
는 숫자가 무색하고 더 끈끈한 인간관계란 20명 내외라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마당발의 인간관계란 본질적으로 피상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옛말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한산해지고, 정승집 말이 죽으
면 먹던 밥을 밀쳐놓고 뛰어 가지만, 정승이 죽으면 먹던 밥
다 먹고 나선다는 게 세상 야박한 인심을 절감케 하였다.
내가 죽었을 때 망연자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가 몇이
나 될지 정말 자신이 없다.
마지막 가는 길은 누구나 혼자서 간다.
시차가 있고 어디서 어떻게 죽느냐 하는 공간의 차이가 있을
뿐, 죽음이라는 길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잔칫집 찾는 것보다 초상집 찾는게 낫다.”는 성경 구
절은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이 됨이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처음보다는 끝을 보고' '잔칫집보다는
초상집에서 있다는 것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