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시자(是母是子)
“是母是子”란 그 어머니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다.
조마리아 밑에 안중근, 곽낙원 밑에 김구가 우뚝 섰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큰아들 안중근이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일제 거물 정치가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사형
언도를 받자 당시 뤼신감옥에 갇힌 장남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 먹지 마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니라.”
안중근은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낸 흰색 명주 수의(壽衣)를 입고 당당하게
최후를 맞는다.
맹자도, 한석봉도 그 어머니 밑에 그 자식이다.
“맹모단기(孟母斷機)”라는 교훈은 맹자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인데 맹자는 홀로 계신 어머니가 걱정이 되고, 보고
싶기도 해서 공부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에게 묻는다.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느냐?”
그러자 맹자는 “아직 끝까지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맹자의 어머니는 실망하여 짜던 베를 가위로 싹둑 잘라 버린다.
그리고는
“네가 공부를 중간에 그만둔 것은 짜고 있던 베를 끊어 버린 것과 다를 바
없다. 중간에 잘라버린 베는 쓸모없듯이 공부를 그만둔 사람도 쓸모없는 사
람이다.”라고 꾸짖자, 맹자는 그 길로 스승에게 돌아가 더욱 열심히 학문에
정진했다는 이야기다.
집안이 어려워 떡 장사를 하게 된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한석봉은
어머님의 가르침에 따라 절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10
년을 채우지 못하고 절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어머니 사람들이 제 글씨를 보고 아주 훌륭하다 합니다.
선생님 또한 놀라셨습니다.” 아들 한석봉이 자신 있게 말하자 어머니는 그
실력을 보자고 했다.
“등잔불을 끄고 한 번 써 보아라.
명필은 어둠 속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법이다.
네가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떡을 썰어 보이겠다.”
어둠 속에서 한석봉은 자신 있게 글씨를 써 내려갔고 어머니는 묵묵히 떡을
썰었다. 잠시 후 등잔불을 켰을 때 한석봉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어머니가 썬
떡은 가지런 했지만, 자신의 글씨는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석봉은 그제 서야
어머니께 용서를 빌고 다시 절로 들어가 남은 공부를 마쳤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성공으로 가는 통과의례의 첫 문턱은 분리(끊어냄)다.
산모와 태아를 연결한 탯줄을 끊어내야 두 생명이 살아남는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한나>라는 여인은 아들 사무엘을 두 살이 되면서 성전에
맡겨 길렀다. 자식과 합일하려는 모정보다는 분리하려는 모정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스승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