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란 매우 외롭고 쓸쓸함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고독해져야 창조적이 생각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고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생각을 통해서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찾게 된다.
그런데 편리한 IT기술이 발달하면서 고독을 잃어버렸다.
나도 그렇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스마트폰에 스스로를 묶어두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인스타를 하고 뉴스를
찾아보고 유튜브를 켜고 카톡에 들어간다.
지금의 우리는 스마트폰만 켜면 카톡과 인스타로 쉽게 빠르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이걸 통제할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진실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고독을 잊고 있다.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도 없고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대면할 필요도 없다. 현실에서 관계를 맺지 않아도 SNS를
통한 관심사가 같은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차단 버튼 클릭 한 번으로 영원히 내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도 있다.
혼자 있을 틈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고독임을 역설한
폴란드의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책에서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은 고독의 기회를 놓친다.”고 말한다.
그는 오직 고독만이 즐길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을 잃는 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박탈당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안타까워 한다.
과거 시대에는 정보 부족에 시달렸다면 지금은 정보홍수에 시달리고 있다.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하지 않던가. 편리한 IT 기술 때문에, 스마트폰 때문에,
고독을 느끼고 즐길 시간이 없어졌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빼앗긴 우리들 저마다의 고독을 탈환해야 한다.
남에게 보이는 내가 아니라 나만 볼 수 있는 나를 가꾸는 시간, 내 고독의
은밀한 기쁨을 찾아야 한다.
물론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다는 ‘일득일실(一得一失)’은 필연적이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언제나 긍정과 부정이 작동한다.
여기서 긍정을 찾아내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미 래를 일궈내는 것 또한
우리가 할 일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 줄어들겠지만 그안에서
자신만의 성장의 기회를 찾아내는 이들도 사실은 많다.
하지만 고독을 잃음으로써 얻는 것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 있을지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