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사람은 있어도, 부족한 재능은 없다고 한다.
부족한 재능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리게
된다는 말이다. 노력하다 안 된다고 중간에 포기하려는 생
각만 버린다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
백열등을 만든 에디슨은 “나의 발명은 나보다 먼저 고안한
사람이 멈추고 떠난 그 자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또 20세기미술계 거장 피카소는 창작의 천재이자 모방의 천
재로 알려져 있다. 우리도 부족한 게 있거나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벽을 넘어선 고수들을 찾으면 된다.
18세기 조선 시대 실학자 박제가는 ‘벽’이 없으면 쓸모
없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벽이 있다는 말이다.
세종대왕은 좋은 문장을 보면 백 번을 읽고 백 번 쓰기를
마다치 않았고, 바보 김득신은 책 한 권을 만 번씩 읽은
문장가이며,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의 18년간 유배생활
중에 ‘목민심서’ 등 수많은 역작을 남겼다.
이들이야말로 벽을 넘어선 시대의 고수들이다.
세계적인 석학이나 거인들치고 한 분야에 바보처럼 천착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속성 때문에 나태해지고 더는 도약하지 못한다. 세상을 살
아가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번은 정말 독해져야 한다.
세상이 뭐라 해도, 자신에게 독해져야 한다.
추호도 흔들림 없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미래에 무엇인가 얻을 가능성이 생긴다.
세상은 놀랍게도
‘적당히 일하며 적당히 사는 사람들에겐 적당한 대우만
해준다.’ 반면 무엇인가에 목숨을 걸고 미칠 정도로
몰입하는 사람에겐 그 이상의 보상으로 돌려준다.
예수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누가복음)고 말 한 것도 먹고 입는 것에 인생
의 긴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보다 큰 꿈을 꾸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밥은 죽지 않을 정도만 먹고 옷은 살이 보이지이지 않을
정도면 되지만, 공부만은 밤을 새워서 하라’고 한 성철 스님
의 말씀도 다 같은 맥락이다.
먹는 것, 입는 것, 손에 쥘 것 등 감각적인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지 마라. 그 쪽 길은 지하로 내려가는 패망의
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