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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채봉님의 <콩 씨네 자녀교육>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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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로 보낸 자식은
콩 나무가 되고
온실로 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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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인물 중에 15퍼센트만이 비교적 문제가 없는 가정 출신이고 4부의 3은 어린 시절부터 고난과 시련뿐인 광야를 거쳐 성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눈물로 키운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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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사랑이 매우 특별하다는 곰의 모성은 어린 새끼가 두 살쯤 되면 새끼 곰을 데리고 산딸기가 있는 먼 숲으로 간다.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산딸기 밭으로 간다. 어린 새끼 곰들은 딸기를 따먹느라 잠시 어미 곰을 잊어버린다. 그 틈을 노려 어미 곰은 몰래몰래 아주 멀리멀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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껴안는 케어가 사랑이듯이 떼어놓는 열정 또한 그것도 사랑 아닌가. 캥거루는 30~40일 만에 새끼를 낳는다. 이 때 태어
난 새끼는 2,5cm, 1g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으로 치면 미숙아다. 그래서 어미의 배주머니(육아낭)속에서 젖을 먹여 4kg정도가 될 때까지 4~5개월 키워 독립생활을 할 수 있게 케어를 하지만 이후부터는 절대로 돌보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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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는 46일이 될 때까지 어미닭의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자라지만, 이후부터는 어미닭은 곁에 얼씬도 못하게 쪼기 시작한다. 엄마를 더 따르고 싶지만 어미 닭은 폭군으로 변해있다.
하는 수 없이 새끼 닭들은 자기들 끼리 모여 엄마 없이 살아갈 방도를 의논한다. 새끼들이 먼저 독립하려고 한 게 아니라 어미가 먼저 독립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부모 자식 간에 상처를 받지 않는다. 동물들이 새끼를 사랑하고 기르는 지혜가 인간뛰어넘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일 아이가 길을 가다 넘어졌다면 안타까워도 그대로 두고 지켜만 보면 된다. 매일매일 무릎을 깨뜨리는 아픔이 있더라도 언젠가 엄마를 떠나 살아갈 수 있는 그 걸음마를 위해 손을 놓아야 한다.
넘어진 아이는 기다리기만 하면 다시 일어서게 마련이다. 참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이를 크게 키우고 싶은가. 방목할 준비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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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학자 성리학의 최고봉인 퇴계 이황선생은 그의 장남인 준에게 321통의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아들 준이가 48세가 될 때까지 그리고 자신이 일흔을 넘기며, 숨을 거둘 때까지 쉬지 않고 자식에게 당부하며 “끝내 농부나 병졸이 되어 일생을 보낼 것이냐”고 질타했다고 한다. 결국 퇴계는 자식을 기대만큼 가르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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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자식농사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만든다는 말은 부모의 유전자를 절반씩 물려준다는 것 딱 거기까지 뿐이다. 부모 뜻대로 자라주는 아이는 없다.
그래서 사춘기 자식은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게 사랑이고 스무 살이 넘으면 정을 냉정하게 끊어주는 게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