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할렘가의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던 흑인 말콤 엑스는 한때 범죄자였다.
그는 도박에 마약을 팔고 매춘부를 관리하고 도시 뒷골목을 누볐지만 결국
경찰에 체포되어 10년 형을 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가 스물한 살이었다.
누군가가 정당한 재판절차를 통해서 유죄판결을 받고 오랜 세월 감옥에
갇혔다면 이 사람의 인생은 확실하게 꼬였다고 말할 수 있다.
말콤 역시 바로 그런 경우다. 그는 수감되었고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그의 몸은 새장에 갇힌 새와 같았다. 사람들의 삶에 존재하는 시간의 유형은
‘죽은 시간과 살아있는 시간’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말콤은 무엇을 하면서
이 긴 시간을 보냈을까?
죽은 시간은 사람이 수동적으로 무엇인가를 기다리기만 하면서 보내는 시간
이고 살아있는 시간은 무엇을 배우고 행동하며 1분 1초라도 활용하려고 노력
하면서 보내는 시간 아닐까? 모든 실패의 순간 우리에겐 이 선택을 요구한다.
살아있는 시간을 원하는가. 아니면 죽어버린 시간을 원하는가.
당신이라면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
말콤은 살아있는 시간을 선택했다.
그는 감옥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책을 읽을 때는 연필과 사전으로 모든 문장과 개념을 일일이 확인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읽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가 읽은 책을 앞에서부터 마지막까지 필사했다.
한 번도 들어 본적 없는 단어들이 그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는 출소할 때까지 시간이 주어지면 책을 읽었다.
종교와 역사를 읽었고 고전과 사회학을 읽었으며 칸트와 스피노자의 철학
을 읽었다. 훗날 그는 흑인 인권운동가로 활동한 사상가가 되었다.
어느 날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출신학교가 어디입니까?
그 질문에 말콤은 ‘책’이고 교도소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감옥은 그에게 학교였다.
그는 책에 빠져들었고 교도소에 구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인생을 살면서 그때보다 더 진정으로 자유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끔찍한 상황에 부딪치지만 태도를 바꾸고 접근법
을 달리해서 그 지독한 상황을 위대함의 밑거름으로 삼았는지 알지 못한다.
부당함이나 운명의 변덕이 어떤 사람을 덮칠 때 사람들의 반응은 욕을 하거
나 싸우거나 저항한다. 하지만, 이건 짧은 생각이다.
죽어버리는 시간이 된다.
죽은 시간을 오래전부터 꼭 해야 할 일을 할 기회로 활용할 때 죽은 시간
은 다시 부활하는 것이다.
죽은 시간이 죽어있는 이유는 게으르고 자기만족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말콤은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는 시간을 더 유능한 범죄자가 되거나 범죄
세계의 인맥을 확대하고 다음 범죄계획을 세우는데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을 서서히 죽이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말콤은 수감되어 있는 동안 자신이 교도소에 올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인생
경로를 집중적으로 성찰했다.
감옥에서는 생각하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유명한 사상
가들이 감옥에서 배출되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교도소는 패배자와 자포자기
하는 사람들을 훨씬 많이 배출해왔다. 재소자들에게는 생각하는 일 말고 달
리 할 일이 없겠지만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은 더 나빠질 수도
있고 반대로 더 좋아질 수도 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놓여있는 환경이 감옥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은 누구나 죽은 시간에 붙잡힐 때가 있다.
그 자체는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괜히 고집을 부리고 억지를 써서 현재의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