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를 잃는 순간 지혜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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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말 년 초면 사람들의 모임이 많다. 그때에^^^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내 이야기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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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가 임신 중에 연주회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를 밴 채 연습에 몰두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자라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가르치지도 않은 곡을 연주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전곡을 거의 완벽하게, 너무나 놀라 아이에게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냥 자기도 모르게 그 곡을 연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제야 그녀는 그 곡이 임신 중에 매일 연주하던 곡이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아이가 배 속에서 그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익혔던 것이다.
책 <잃어버린 지혜, 듣기>은 이 같은 사례와 인디언의 태교 등을 통해
‘배 속 대화 및 듣기’의 중요성을 일깨준다.
북미 원주민 여인들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면 곧 바로 배 속의 아이에
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 반드시 ‘가락’에 실어서 들려준다는
점이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나 태어나서나 이야기와 노래로 가득 찬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배우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내적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이를 통해 대화 하
며 사회에 귀를 내민다.
태아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안다고 한다. 그래서 배 속의 아이에게 말 하
고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다. 왜 인디언 여인들이 새소리와 동물의 소리를
자기 입으로 직접 소리 내어 들려주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공기를 통해서
전해지는 새소리나 자연의 소리는 어머니의 배를 통과하는 동안 희미해 질
수밖에 없지만 어머니가 직접 성대를 울려 낸 소리는 그보다 훨씬 큰 소리
로 증폭되어 태아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태아가 직접 언어를 해독하지 못하므로 메시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어머니
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충분히 안다는 얘기다.
그래서 기쁨과 평온, 따듯함, 사랑, 등의 감정을 실어 나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태아에게 듣고자하는 욕구를 더 키워주겠다는 것이다.
귀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곧 우리의 감각적 통합능력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폐증, 난독 증, 학습지체, 실어증, 언어장애, 마음의 질병, 인
생의 좌절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다 듣기 장애에서 온다는 것이다.
서구인들의 음악치료 등은 듣기를 이용한 치유법 아닌가.
잘 듣는 것을 통해 우리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듣기를 잃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물질에 이끌리고 나를 앞
세우고 남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언제나 시끄럽다.
그런 자리에는 주장만 있을 뿐 지혜가 있겠는가.
입은 하나인데 귀가 둘인 까닭은 두 배로 들으라는 의미다.
성경(야고보서1장)에 ‘듣기는 빨리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말한다. 관계 속에서도 상대의 말을 속히 듣고 자신이
말 할 때에는 재갈물린 혀처럼, 곱씹고 또 곱씹어 사려 깊은 말 몇
마디만 한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정갈해지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
이다.
지혜가 없는 문화는 죽은 문화다.
바로 여기에 현대문명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듣기만 잘해도 인생이 달라진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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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를 ‘경청’이라고 한다.
경청(傾聽) ! 또 경청(傾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