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supportEmptyParas]--> <!--[endif]-->
쇼펜하우어의 <소품과 단편집>에 고슴도치에 관한 우화가 나온다.
추운 겨울 고슴도치들이 체온을 유지하기위해 붙어 있으려고 했지
만 몸의 가시가 서로를 찔려서 다시 흩어진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흩어지면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 다시 모이고,
가시에 찔리면 또 흩어진다.
결국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상대방의 가시를 피하면서도
서로의 체온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발견한다는 이야기다.
스스로의 자립과 상대와의 일체감이라는 두 가지 욕망을 빗대는
용어로 쓰이는 글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관계의 부담은 최소화하면서도 외로움은 해소하고 싶은 딜레마
때문이다. 관계를 맺지도 끊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기 위해서 아닌가.
<!--[if !supportEmptyParas]--> <!--[endif]-->
폴란드의 사회학자 <바우만>의 말이다.
“사랑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작업, 끊임없는 노동,
서로 배우는 동시에 가르치는 것이다.”
이제는 가족이후의 가족, 관계이후의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
한다. 고슴도치의 딜레마 사이에서 “당신만의 적당한 거리”는 얼마
인가?
<!--[if !supportEmptyParas]--> <!--[endif]-->
누구나 타인과 연결되어있지만 정작 누군가가 필요할 때는 혼자인
고립의 시대가 오면서 나에 주목해야하는 시대가 왔다. 혼자 살아가
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증하는 이 시대에 나의 자존감을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다.
이제 내면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홀로 존중받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이 운명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오직 관계밀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기밀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와 평생 좋은 사이로 남고 싶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우선 자기밀도를 높여가야 할 것이다.
과도한 타자지향은 ‘자기밀도의 제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