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리코너 장인수 선생 노량진 대성학원 입시 전문학원에서 강사로 퇴직후 1만여권의 책을읽고 주옥같은 내용 을 선별하여 진서리 코너에 게제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꿈 자식에게 읽게 하십시요
  • 아버지의마음 하나님의 마음
  • 2017-09-01
진서리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


성경을 읽으면서 기독교가 왜 유대인만의 종교가 아니라 전 세계인


종교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묻는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너희 같으면 양 한 마리가 없어졌을 때>


아흔아홉 마리가 있으니 됐다 나머지 한 마리는 할 수 없지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았을 때 기뻐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 아닌가.


  두 아들을 둔 아버지에게 어느 날 둘째가 자기에게 물려줄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걸 전부 가지고 다른 나라로 떠나 허랑방탕하게


써버린다. 그리고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아버지에게 돌아온다. 그 아버지


멀리서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그리고 귀한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열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것을 먹이


며 기뻐한다.


  그때 아버지를 모시고 착실하게 살던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화를 낸다.


형의 입장에선 아버지께 늘 순종하고 아버지를 위해 뭐든 다 했는데 자기


에게는 아무런 상도 주지 않았으면서 탕자인 동생만 귀하게 대접하니 화가


날만도 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 한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동생은 죽었


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니냐


지상에서는 잘난 사람이 첫째이지만 천상에서는 못난 사람이 더 귀하게 여겨


진다. 약자,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들에게 항상 소외되는 것이 지금의 시장논


리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꾸로 소외된 사람, 못난 사람, 버림받은 사람을 싸고


돈다. 세상 논리로 보면 부모가 애써 벌어준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고 돌아온


탕자를 뛰어나와 반기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양을 치던 시대에서 지


식 정보시대로 넘어오는 동안에도 계속 성경이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역설


적인 것 아닌가.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그리스 사람이 쓴 책에도 나오는데 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함께 읽으면 아주 쉽게 이해가 간다.


그 책 속의 형제 중 형은 성실하게 일하는데 아우는 망나니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다 이 형제가 여행을 하다가 도중에 해적에게 붙들린다.


해적들은 부모에게 몸값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낸다. 놀란 아버지가 모든


재산을 다 팔아보니 겨우 한 명 몸값밖에 안 된다. 모든 재산을 팔아 그


먼 길을 왔는데, 해적들은 형제 중에서 한 명만 골라 데려가라고 한다.


   <아버지는 누구를 데려올까요?>


 여기서 성경과 겹쳐진다어느 모로 보나 당연히 형을 데려와야 맞다.


그런데 아버지는 동생을 데려온다그런 선택의 뒷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붙잡혀있는 동생은 병에 걸린 상태,


마시고 방탕하게 돌아다니다 병을 앓고 있는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


한다. 


저는 병이 들어서 가봐야 얼마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버지


속을 좀 썩혔습니까? 그러니 효자 형님을 데려가고 나 같은 개망나니


잊으시고 형님을 데려 가십시오


그러면서 슬피 운다. 회개를 하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니며 자기를 배신한 아들이지만 눈물을 흘리며


뉘우치자 아버지는 형을 버려두고 탕자를 받아들이고 끌어안는다.


동생은 비록 탕자 같은 삶을 살았지만 형을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선택


하는 순간 구제를 받는다. 이게 아버지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이다.





 회개는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눈물의 뜻이 분명하게 보인다.


나는 불효자입니다. 그리고 병이 들었어요. 형님을 데려가시고,


나는 이대로 죽게 내벼려 두십시오. 하자 아버지는 눈물로 회개


하는 동생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은 애통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하신다.


마음을 찢고 가슴을 찢는 것이 회개라고 말 한다.


길을 걷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문득 자신을 돌아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회개 아닌가. 


 세상은 늘


죽을 만큼 괴로운 것들을 넘어서야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회개의 눈물과 땀을 흘려야 비로소 빵을 해결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교회나 사찰에 큰돈을 헌납하고 큰 돈 들여 굿을 해본들 새로운


세상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이다.


여호아는 거듭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죽을 만큼 괴로운 것들을 넘어서야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고 하


지 않던가. 그러니 나날이 새롭게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흐르는 눈물을 닦지 말고 마를 때가지 그냥 놔둬라.


눈물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것이다.


당신에게 눈물이 있다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것, 사랑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것,


그리고 뉘우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문상을 갔는데 곡소리는커녕 눈물 한 방울 구경할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우는 사람은 죽은 이의 늙은 친구뿐이다.


가족들은 울지 않는다. 하기야 눈물바다가 되던 학교 졸업시장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연인과의 이별 앞에서도 쿨(cool)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태도다. 눈물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는다는 것 그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라 가난을


넘어서는 사랑의 눈물이다.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비가 그치자 나타난 무지개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