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교우(交友)편에 “급난지붕(急難之朋)”이라는 글이 있다.
급하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를 뜻하는 말이다.
서로 술 마시고 밥 먹을 때는 형이니 동생이니 하는 친구가 많으나
급하고 어려울 때 막상 나를 도와주는 한 명도 없다는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들은“급난지붕”에 관한 옛날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
한 부자에게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아들이 친구를 좋아해 날마다 밖
으로 나가 친구를 대접하느라 돈을 낭비하는 것을 예사로 안다. 아들
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가 어느 날 아들을 보고 타이른다.
얘야, 너도 이제 집안일을 돌볼 생각을 해야지 어찌 날이면 날마다 밖
으로만 돌아다닌단 말이냐?
“아버지, 제가 나가고 싶어서 나가는 게 아닙니다.
친구들이 모두 제가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환영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
“하지만 친구가 많다고 무조건 좋아할 일은 아니다.
혹시, 네 친구들이 너를 좋아하는 이유가 너에게서 받는 재미 때문인지
모르겠구나. 아버지, 제가 어린애 인줄 아세요.
제 친구들은 모두 진실한 친구들입니다.
그렇다면, 네 친구들이 진실한지를 애비가 시험해 보아도 되겠느냐?
네, 좋습니다.
아버지는 그 날 밤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거적에 싸가지고 아들에게
지게에 지게하고 아들이 제일 친하다는 친구의 집으로 가서 대문을 두
드린다. 친구야, 실은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네. 여기 그 시체를 지고
왔으니 어떻게 좀 도와주게나.
‘뭐라고, 시체를 가지고 왔다고. 나는 그런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으니
냉큼 사라지게’ 아들은 이렇게 진실하다는 친구의 집을 연달아 찾아가
사정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두 다 냉정하게 거절만 당한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애비의 친구를 찾아가보자. 두 사람은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간다. 아버지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아버지의 친구는 어서
들어오게나. 조금 있으면 날이 샐 것이네 그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
기에는 위험하네. 그러니 당분간 여기 내려놓고 내 옷으로 갈아입게나.
그리고 나서 수습책을 같이 생각해보세 한다. 아버지의 친구는 거적에
쌓인 시체를 번쩍 둘러매고 집안 마당으로 들어간다.
그때서야 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며 친구에게 말 한다.
친구야 미안하네.
그 거적에 쌓인 것은 시체가 아니라 돼지라네.
내가 돼지 한 마리를 잡아왔네 그려
‘뭐냐, 짓궂은 친구 같으니라고.
자, 우리 돼지고기 안주해서 술이나 싫건 마시세.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 한다.
이제 알았느냐?
형편이 좋을 때는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많으나, 위급하고 어려운 처지
에 있을 때 내일처럼 도와주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는 법이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온 세상에 널려있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이나 될꼬.^^^
그렇다.
진실한 친구는 평상시에는 알 수 없다.
시체를 짊어지고 찾아가면 당신의 친구는 어떻게 나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