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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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핸들을 잡고 카톡을 하고 문자를 보내느라 시선이 엉뚱한 곳을
향하니 사고의 위험이 도사린다. 어떤 소년이 길에서 우연히 5달러짜리
지폐를 줍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땅만 바라보며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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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또 무엇을 주울까?"
이렇게 해서 그가 평생 주운 물건은 단추 2 만여 개 ,머리핀 4 천개,
그리고 동전 수천 개, 그 외에 자질구레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줍기 위해 땅만 바라보고 걷는 바람에, 정작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했다. 길가의 아름다운 꽃, 하늘의 뭉게구름, 들판의 새들을!
평생 땅만 바라보느라, 고개를 들어 넓고 넓은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다.
높은 이상과 꿈을 향해 제대로 나래조차 펴 보지 못한 채 인생을 끝내고
말았다.
당신은 무엇을 바라보고 사는가?
인생은 바라보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4천 년 전에 유대 민족사에 기록으로 남은 구약성서에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 사이의 재산분할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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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은 나이가 많아지는데도 아들이 없자 형제의 아들을 양자로 삼아
함께 본토를 떠나 농장을 개척한 후 그들의 소유가 커지자 함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물질이 풍요하면 하나님도 더 잘 섬기
고 가족들과도 더 화목하게 지낼 것 같지만, 오히려 물질적 풍요가 그들의
화목을 깨뜨린다. 가난할 때는 서로 배려하고 다정했었다.
그런데 소유와 재물이 늘어나고 배가 불러지면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예
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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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은 아브람의 조카이지만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는 아들과 같은 존재
이고 롯의 입장에서는 고향과 친척, 부모님, 본토의 집을 버리고 아브라함을
아버지처럼 여기고 따라올 만큼 의지해 왔는데 그들의 소유가 늘어나니 친
아들과도 같았던 롯과 아브람도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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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말 한다. 부디 내게서 떠나라
너와 나 사이에 나의 가축치는 사람들과 너의 가축치는 사람들 사이에 서로
갈등하고 다투고 싸운다. '넘치는 욕구'와 '부족한 자원'의 긴장 때문에 갈등
과 다툼이이 일어나 동거할 수 없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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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은 롯에게 묘안을 제시한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아브람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양보한다.
이권을 챙기지 않고 내려놓았다.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하지만 아브람은 보이지 않는 것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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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제안에 조카 롯의 선택을 보자.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다‘
롯은 인간적 욕심을 따라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물이 많고 목초지가 풍부한 땅'을 선택한다.
지혜로운 선택 같지만, 보이는 것만을 좇아간다.
땅에 있는 보이는 것을 좇아간다.
인간적 욕심을 좇아갔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파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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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터져 나오는 사건사고, 총각네 야채, 미스터 피자, 기업주들의
갑 질 횡포, 할리스 커피 자살, 심지어 중 고등학교 교사들의 성추행
등은 보이는 것에만 주목한 탓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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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더 소중한 것들이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보이지 않는 세계를 봐야 한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챙겨야 한다.
그런데 롯은 그걸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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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욕심을 포기할 때,
기득권도 내려놓을 때,
이권을 챙기지 않을 때, 손해 보는 걸까?
아브람은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조카 롯이 자신을 떠날 때 아브람은 참으로 참담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통하고 외로운 아브람의 마음을 아신다.
그를 위로하시고 그에게 소망을 주셨다.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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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속상해하지 말자.
현실적인 이익이 보이지 않아도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가자.
나무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과일 나무에서 어린 열매를 소가 내는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보기 좋은 나무로, 풍성한 열매로 보답한다.
우리의 눈은 푯대를 향해 고정해 두어야 하건만, 자꾸 주변 세계를 두리
번 거리다가 정작 주시해야 할 목표물을 놓치는 실수를 하곤 한다.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면 속편하고 행복할 텐데,
이 사람 저 사람 바라보는 버릇이 있어 갈등과 다툼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환경과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만 바라보면 되는데, 우리
눈은 다른 곳을 향한다. 그러다 보니 낙심하고 상처를 받곤 한다.
항상 우리의 눈을 점검해 보자.
보이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마음의 눈, 영적인 눈도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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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하다하여 한 가문이 망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물질적 풍요만 좇다가 정신적 유산이 텅 비어버리는 바람에 가문
이 멸망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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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과 롯이 갈라지게 된 원인은 그들이 동거하기에 땅이 좁아서가 아
니라 소유가 많으니 동거하기에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소유의
풍성함에 눈이 묶이면 더 소중한 가치를 놓치기 쉽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이라”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들에 지나치게 주목해서는 안 된다.
불교에서도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하지 않던가. 잠깐 있다(색)사라지는
것(공)이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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