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 길 멈추지 말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다. 절망이란 더 이상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절망이다.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절망 아닌가.
우공이산(愚公移山)에서 희망을 보자
우공이라는 아흔 살 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노인의 집 앞에 넓이가
칠 백리, 만길 높이의 태행산과 당옥산 두 산이 길을 막고 있어 생할
하는데 몹시 불편했다. 어느 날 노인은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 한다.
“우리 가족이 힘을 합쳐 이 두 산을 옮겼으면 한다.
당연히 가족들은 반대다. 가당치도 않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다음 날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우공의 아들, 손자가 지게에 흙을 담아 발해 바다에 버리고 돌아오기
까지는 꼬박 일 년이 걸린다.
이 모습을 본 이웃 사람들이 “이제 멀지 않아 죽을 당신인데 어지 그런
무모한 짓을 합니까? 하고 비웃자,
“내가 죽으면 아들이 그가 죽으면 손자가 계속할 것이요”라고 대답한다.
이처럼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는 소원을 기필코 해내겠다는 뚝심을
가진 사람은 힘 든다고 낙담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라는 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두 산을 지키던 산신이 두 산을 옮기고 말겠다는 우공의 말을 듣고는 큰
일이 났다고 여겨 즉시 천제에게 달려가 두 산을 구해달라고 호소한다.
이 호소를 받아드려 천제는 두 산을 각각 멀리 삭땅 동쪽과 옹땅 남쪽으로
옮겨주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며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임을 알려주는 교훈이다.
당신은 우공처럼 뚝심을 가져보았는가. 우공의 뚝심은 욕심이 아니다.
원하면 언젠가는 채워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성경 로머서 4장 18~)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John C. Maxwell)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중 약 95퍼센트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기록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글로 쓰기를 무척 싫어한다.
그러나 자신의 목표를 글로 기록한 5퍼센트의 사람들 중에 95퍼센트가 자신
의 목표를 성취했다고 말했다.
원하는 것을 분명히 글로 적어놓으면 95퍼센트의 사람들이 자기가 적은 글
대로 이루어진다는 그의 연구결과이다. 목표를 글로 기록하면,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진다는 결론을 말하는데도 우리는 글로쓰기를 죽기보다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