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후흑학(厚黑學)
후(厚)는 면후(面厚)를 가르치는 말로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다는 뜻이고
흑(黑)은 심흑(心黑)마음과 뱃속이 검어 음흉하고 여간해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후흑학의 골자는 한마디로 낯가죽이
두껍고 뻔뻔할수록, 뱃속이 숯덩이처럼 시커멓고 음흉할수록 출세하고 성
공할 수 있다는 논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뻔뻔한 것은 천하의 대본(大本)이요, 음흉한 것은 천하의 달
도(達道)라고 가르친다. 유학인 공자(논어)의 가르침과는 상극으로 청나라
말기에 이쫑우라는 사람이 창안한 이론으로 서양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에 버금가는 처세 학이자 통치 학의 원리라고 보면 무리가 아니다.
厚黑學을 창안한 이쫑우의 말이다.
“두꺼우나 형체가 없고, 검으나 색이 없으니 무색무취, 무형무색이로세.
어찌 범인이 그들의 상판이 두꺼운지, 속이 시꺼먼지 알 수 있으랴”
중국 후흑학의 달인 유방을 예로 들어보자.
보잘 것 없는 흑수저의 운명을 타고난 그가 초패왕 항우를 제치고 천하를
얻었는지는 후흑 학설이 아니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유방은 낯이 두껍고
항우는 낯이 두껍지 못했다. 항우는 힘과 재능 출신가문 등에서 유방을 압
도 했지만 신분과 재능을 과신했고 염치를 따지느라 기회를 잃었던 반면
유방은 항우에 비해 모든 면에서 밀렸어도 염치 따위는 깨끗이 버렸기 때
문에 천하를 거머쥘 수 있었다.
유방의 후흑은 한신과 팽월 등의 일등 공신들을 숙청하는 토사구팽(兎死
狗烹)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토사구팽이란 말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범여였지만 세간에 더 알려진 것은 한신이 유방에게
숙청당하면서 한 말 때문이다.
“교활한 토기를 잡고나면 사냥개도 잡혀 삶아지고, 높이 나는 새가 다
잡히고 나면 좋은 활도 광에 들어간다. 천하가 평정됐으니 이제 나도
팽 당함이로다.” 권세와 이득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많이 차지하면 나는 조
금밖에, 내가 많이 차지하면 상대방이 조금 차지한다.
그러니 서로 힘이 충돌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유방은 천하를 평정한 후 공신들을 차례로 죽인 것이다.
뻔뻔하기는 했지만, 음흉하지 못해 실패한 사람이 한신이고, 음흉하기는
했으나 뻔뻔하지 못해 실패한 사람이 범증 이다. 애초에 한신은 낯이 두꺼
운 사람이었다. 그가 어릴 적 회음 땅 도살장 주변의 건달들이 한신을 없이
여겨 “네가 비록 몸이 크고 칼 차기를 좋아하나 겁쟁일 것이니 나를 처 죽
일 수 없으면 내 사타구니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라”라고 한다.
이에 한신은 몸을 구부려 지나가니 시장사람들이 모두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으나 이것은 분명 한신의 뻔뻔한 저력이었다.
한신의 얼굴 뻔뻔함은 유방에 못지않다.
한신이 제나라를 치고 나서 자신을 제나라 왕으로 봉해달라고 청하자 유방
은 심히 못마땅했지만 그것을 숨기고 한신을 제왕에 봉한다. 이에 한신의
책사 괴통이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유방에게서 독립할 것을 권유했으나
한신은 자기에게 옷을 벗어 입혀주고 밥을 먹여준 유방의 은혜를 잊지 못한
다며 괴통의 권유를 외면하였으나, 언젠가는 자신을 배신할 것을 의심한
유방에게 토사구팽 당해 참수당하고 구족(九族)을 몰살당했다.
반면에 범증은 ‘음흉’하기만 했다.
항우에게 범증은 가장 믿을 만한 책사였다. 그래서 유방의 책사였던 진평
은 항우와 범증 사이를 갈라놓아야 한다고 봤다. 진평은 반간계를 써서
범증이 비밀리에 항우에 대한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항우가
범증을 의심하자 범증은 미련 없이 물러나겠다고 선언하고 고향으로 내려
가던 중 화를 참지 못한 채 등창이 나서 죽고 만다. 화를 참지 못하는 것
은 얼굴이 두껍지 못한 탓이다.
결국 범증은 한 시대를 움직일만한 책사였지만 얼굴이 두껍지 못해 좌절
하고 죽음에 이른 것이다.
이번에는 삼국지의 영웅들 중 진정한 후흑의 달인 유비를 보자.
유비의 특출한 점은 낯가죽이 보통 두꺼운 게 아니다. 의리와 지조가 없
는 기회주의자처럼 항상 변신을 밥 먹듯 했다.
여포에게 의지하는가하면 조조에게 붙고 다시 원소의 품에 안기는가하면
유포 쪽에 기울고, 끝내는 숙적인 손권과 결탁하는 등 자시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면 조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개의치 않았다.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남 밑에 얹혀살면서도 수치심 갖지 않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면 아무 때나 눈물 흘리는 특기까지 가졌다. 진퇴양란, 최후의 순
간에 이르면 그는 꼭 통곡을 했는데 그 통곡은 상대의 감정을 부드럽게
녹일 수 있는 독특한 연민의 감정을 드러내서 어려운 국면을 유리하게
바꾼 일이 많았다.
유비의 영토는 모두 그의 눈물 때문에 얻은 것이며,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봉착하면 사람들을 붙잡고 한바탕 대성통곡을 해 패배를 성공으로 뒤바꿔
넣기도 했다. 이같이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얻어 천하를 도모할 때 눈물로
자신의 심정을 포장해 그들을 자신의 수하에 붙박아 놓았으며 제갈량 앞
에서는 눈물로 우국충정의 맹세를 보임으로써 삼고초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았다. 이렇듯 유비의 낯 두꺼운 공력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
했는데 그 골력이 최고조에 달한 장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자신의
어린자식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사건을 들 수 있다.
중국에서 발명된 바둑은 씨줄과 날줄 19개로 361개 칸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다. 바둑은 생각으로 싸우는 전쟁이다. 상대에게 수가 읽혀서는 안
된다. 동시에 상대의 허를 찔러 제압하는 묘수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바둑은 후흑의 게임이다. 프로기사 이창호가 실전에서 가장강한 까닭은
그의 얼굴이 두껍고 그 속이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생존하려면 ‘후흑’의 원리를 공부하고 ‘후흑’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굴욕을 참아내기 위해서는 낯이 두꺼워야 하고, 결단을 내릴 때에는 인정
을 돌아보지 않는 냉혹함과 더불어 그 속마음을 들키지 않는 심흑이 있어
야 한다. 리더를 꿈꾸는 자라면 서재에 한쪽은 논어를 다른 한쪽에는 후흑
의 서적들을 챙겨놓고 수시로 읽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