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과 요양원
일전에 장모님(101세)이 계시는 요양원을 찾았다.
시력도, 청력도 거의 상실된 상태였다.
노모를 맡겨놓고 자녀들의 방문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한적하다.
가봐야 알아보지도, 듣지도 못하는데 찾아본들 대수야고 말 한다.
이렇게 되면 기로(棄老)다.
기로란 늙어 쓸모없으니 갖다 버리는 장례풍습이다.
기로는 현재 내몽고에 있었다는 장례풍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 요양원을 ‘기로나 고려장’과 같은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본인의 선택으로 요양원에 온 노인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초등하교 5학년 교과서에 요약된 고려장이란 아주 먼 옛 날 가난한 농
부가 굶기를 밥 먹듯 하는지라 제대로 봉양을 못해 피골이 상접한 70세 노모
의 초췌한 몽골을 참아 보기가 민망하여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어 노모를
‘지게’에 지고 가서 깊은 산속에 토굴을 파고 쑥 죽 한 그릇과 물 항아리를 두고
돌아오는 길에 동행했던 자신의 아들이 버리고 온 ‘지게’를 다시 집으로 가져가
려고 했다. 농부는 자신의 아들 행동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물어보았다.
“왜 버린 지게를 집으로 가져가려고 하니?”라고 묻자
“아버지가 할머니처럼 70세가 되면 이 지게로 아버지를 버리려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농부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산을 내려와 어려운 살림이지만 극진
하게 봉양했다는 설화가 고려시대부터 전해오고 있다는 예기를 나는 어릴 적부
터 어머니한태서 여러 차례 들었었다.
고려시대 효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말이지, 한반도에는 없었다는 장례풍습
이라지만, 요양원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고려장을 연상케 한다.
최근 한 연구기관의 자료에 의하면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아편 사용량을 비교
조사했더니 선진국의 아편 사용량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이유는 선
진국의 경우 병든 부모를 요양원에 맡겼다가도 죽음이 임박하면 집으로 모셔다가
온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게 되는데 그사이에 환자의 통증을 덜어들리
기 위해 사용되는 아편사용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살던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임종을 맞는 선진국 노인들이 부럽지 않은가.
“나를 도와 줄 사람의 숫자는 내가 도와 준 사람의 숫자와 비례한다.”는데,
부모와 자식사이에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자식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내 몸의 기본적인 체력이 떨어져 모든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확연히
들어나는 법이다.
1608년에 발표된 ‘리어왕’에서 세익스피어는 “자식도 내가 뭔가를 가지고 있을
때 자식과 내가 아무것도 없을 때 자식은 양과 이리처럼 사뭇 다르다”라고 말했다.
자식은 내 핏줄이지만 때로는 가장 박덕한 적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