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여 년 전에 유대민족사에 기록으로 남은 구약성서(창세기13장 7절~)에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 사이의 재산분할사례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지는데도 아들이 없자 형제의 아들
을 양자로 삼아 데리고 함께 본토를 떠나 개척하던 농장이 커지고 그들의 소유가 많아지자
함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찌되었던 그들이 갈라지게 된 원인은 물질적 풍요가 그들의 화목을 깨뜨린 것이다. 사람
의 생각으로는 물질이 풍부하면 하나님도 더 잘 섬기고 가족들과도 더 화목하게 지낼 것 같
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허다하다. 가난할 때에는 서로 배려하고 다정했었다. 그런데
소유와 재물이 늘어나고 배가 불러지면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예나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이지만,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는 아들과 같은 존재이고, 롯의 입장
에서는 고향과 친척, 부모님, 본토 집을 버리고, 아브라함을 아버지처럼 여기고 따라올 만큼
의지해 왔는데 그들의 소유가 늘어나니 친 아들과도 같았던 롯과 아브라함도 헤어지기로 결심
하고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말했다.
아무쪼록 너와 나 사이에 나의 가축치는 사람들과 너의 가축치는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계속
되어서는 안 된다. 온 땅을 네 뜻대로 할 수 있지 않느냐? 부디 내게서 떠나라. “네가 오른쪽
(우右)으로 가면 나는 왼쪽(좌左)으로 갈 것이요, 네가 左하면 나는 右 하리라.”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준다. 그리하여 롯은 ‘눈에 보기 좋은 땅, 온 땅에 물
이 넉넉한 요단지역(소돔과 고모라)’을 선택한다.
재산 분할이 있은 후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성은 환락과 쾌락의 도시로 변해 멸망을 당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지진이 일어나 화재로 불바다가 된 것이다. 롯의 아내는 두고 빠져나
온 보물에 욕심이 생겨 뒤돌아보다 화를 면치 못하고 소금기둥이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겨우 두 딸과 함께 목숨을 구한 롯의 처지는 그야말로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런데 황무지에 남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
히 이르리라’는 축복과 함께 100세에 아들(이삭)까지 주신다.
우리는 영육 간에 봄과 같은 꽃 같은 세월을 보낼 때가 있다. 그러나 이때 조심해야 한다.
따뜻한 봄이 지나면 뜨거운 여름이 올 것에 대비해야하고, 풍요한 가을 뒤에는 혹독한 겨울
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지게 된 원인은 그들이 동거하기에 땅이 좁
아서가 아니라 소유가 많으니 동거하기에 더 좋은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소유의 풍성함에
눈이 묶이면 더 소중한 가치를 놓치기 쉽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말이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잠간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들에 지나치게 주목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불교에서는 잠간 있다(色)가 사라지는 것을 공(空)이라
하여 색즉시공(色卽是空)라 한다.
앞에서 본바와 같이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느 지역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선 곳에 하나님(진리)이 함께 하는가이다. 누구와 함께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다”라고 찬송하지 않던가.
부부가 이혼을 하면서 재산분할 문제로 다투다가 철 천지 원수가 되고, 부모의 유산을 물려
받는 과정에 자식들이 서로 더 갖겠다고 다투다 이웃보다 못한 관계가 되는 일을 우리는 허다
하게 본다. 아브라함처럼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할 것이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할 것이다”
라고 할 수 있겠는가. 복잡한 것은 약하고 단순한 것은 강하다는 말처럼 아브라함의 결단은
하늘의 축복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