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들은 양력 섣달그믐 저녁에 ‘소바’라는 국수를 먹는다.
새해를 맞으면서 국수처럼 명이 길기를 기원하는 풍습이다.
이야기는 북해도에 있는 북해정(北海亭)이라는 우동집에서 시작한다.
어느 해 섣달그믐 밤 10시가 넘어 가게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낡은 반코트를 입은 부인이
여섯 살, 열 살쯤 된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부인은 “저, 우동 1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 까요?”하고 미안하다는 듯 머뭇거리며 말했다.
여주인은 “네, 네 이쪽으로 앉으세요.”하고 난로 가까이로 안내하면서 주방을 향해
“우동 1인분!”이라고 전한다.
주방에서 일하는 남편은 “예!”하고 대답하면서 손님을 슬쩍 본 뒤 세 사람이 1인분을 주문하는
딱한 사정을 짐작하고는 국수 1인분에 반 덩이를 슬쩍 더 넣고 삶는다.
우동이 나왔고, 정겹게 나누어 먹으면서 “참 맛있네요” 하는 큰 아이의 목소리,
“엄마도 드세요”하며 한 가닥을 집어 어머니 입으로 가져가는 작은 아들의 목소리가 카운터
에 까지 조용히 들렸다.
1년이 흘러 다시 섣달그믐이 왔다. 밤 10시가 되자,
1년 전의 세 모자가 북해정에 다시 찾아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우동 1인분을 주문한다.
이들을 반갑게 맞은 북해정 여주인은 “여보 3인분 줍시다.”하고 남편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남편은 “안 돼요. 그러면 도리어 저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해요”하면서 작년과 같이
우동 하나 반을 삶았다.
세 모자는 우동 한 그릇을 두고 “아, 맛있네요. 내년에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면서 다 먹은 뒤 150엔을 지불하고 나갔다.
만약 북해정 주인이 세 모자의 사정을 딱히 여겨 우동 3인분을 내주었다면, 분명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호의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데 있다.
인간의 삶에서 부부사이, 형제사이, 친구사이, 기업과 소비자사이, 대통령과 국민사이가
어찌 보면 모두 고객관계 아닌가?
고객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데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고객의 필요와 아픔이 무엇인지 감지하는 능력이 뛰
어난 왕이었다. ‘조선왕조신록’에 따르면 세종이 즉위한 뒤 수년간 가뭄이 계속되었다.
흉년으로 배고픈 백성들의 아픔을 생각한 세종은 농사에 도움이 되는 측우기를 만들고 지역별
특성에 맞는 영농기술을 밝힌 <농사직설>펴냈지만 농민이 한문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
닫고 훈민정음을 창제한다.
훈민정음 반포문에 “글 모르는 백성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서~~~”라는 구절이 나온다.
1964년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사통팔달로 뚫린 고속도로를 보고나서 ‘라인 강의
기적’으로 대변하는 서독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고속도로라고 판단하고 돌아와 1인당 국민
소득 164달러였던 보릿고개 시절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경부고속도로 연장 428
킬로미터 건설에 429억 원의 예산을 세워 기공식을 치루고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박대통령은 1969년 추운 겨울 어느 날 공사현장을 방문하여 살피던 중 한 불도저 기사가 손에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장갑을 벗어 그 기사에게 끼워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모두 감동을 한다
당시 한국은 기술도, 경험도, 능력도 없는 무모한 일에 도전만 한다는 비난을 물리치고 428km
대공사를 완성시켜 1970년 7월7일 준공식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관계다.
고객의 마음속에 흐르고 있는 필요와 아픔의 정서를 읽어내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을 누구나
원한다. 그런데 상대의 아픔을 읽어내는 감수성은 결코 오만에서는 나올 수 없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에게 복종과 충성심만을 강요하는 오만에 머물렀다 면 글 모르는 백성들의
아픔을 해결하는 한글이 만들어질 수 있었겠는가.
성경(갈라디아전서 6장13절) 에 “너희를 불러 자유를 주오니, 너희 자신의 향락에 그 자유를 쓰지
말고, 오직 서로 사랑의 봉사를 위해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낮은 곳으로 임하라’고 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