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감이후지(坎而後止)’라는 글이 있다.
감(坎)자는 구덩이라는 감자다.
물은 항상 낮은 데로 흐르고, 빈자리를 채우고 나서야 다시 흐른다.
흐르던 물이 구덩이를 만나면 멈추고, 구덩이가 채워져야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
누구라도 살다보면 구덩이에 빠질 수 있다.
내가 실수하여 빠질 수도 있고, 남의 모함으로 그럴 수도 있다.
이미 빠져 있다면 발버둥치고 허우적거려봐야 소용이 없다.
꾸준히 웅덩이에 흘러들어가서 가득 채우고 나서야 제갈 길을 가는 것이니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
사람의 그릇은 역경과 시련, 고통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구덩이에 갇혀 자신을 할퀴고 절망에 빠져 남을 원망하고 포기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웅덩이를 채워 넘칠 때까지 원인을 분석하고 과정을 반성하며 마음을 다잡아 재기를 다
짐하는 사람이 있다.
일전에 강진 다산 정약용 초당을 찾았을 때 생각했던 글이 坎而後止였다. 이 깊은 산속,
인적이 드믄 곳에서 18년의 긴 세월 유배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을꼬?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백련사(白蓮寺)가 있는 만덕산(萬德山405m)을 아침저녁으로 오르
내리고, 수많은 책을 읽고, 쓰는 일이 다였다.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수많은 역작은 이곳에서 탄생한 것들이다.
‘지지불태(知止不殆)’라 했다.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니, 구덩이 직전에 멈출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