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보백보’라는 말은 도토리 키 재기처럼 고만고만하다는 표현이다.
50보를 도망친 사람이 100보 도망친 사람을 겁쟁이라고 한 것을 맹자
가 양나라 혜왕에게 전장에 비유하여 한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는 중국이 전국시대여서 제후들에게 중요한 것은 영토, 백성의 수
와 전쟁을 잘 하는 방법이었다.
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묻는다.
“나는 나름대로 선정을 베푼다고 생각하는데 국경을 넘어 우리나라로 넘어
오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뭡니까?”
맹자가 대답 대신 양 혜왕에게 물었다.
“싸움터에서 50보 물러난 사람이 100보 물러난 사람을 향해 비겁자라고
비웃는 건 가당한 일인가요”
양 혜왕이 답한다.
“그건 가당치 않지요. 50보나 100보나 비겁한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자 맹자가 말했다.
“맞습니다. 왕께서 선정을 베푸신 다고하나 시실은 이웃나라 왕들과 50보
100보지요. 50보 100보로는 백성들이 국경을 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남보다 앞서가고 싶다면 50보 100보로는 부족합니다.
훨씬 그 이상이여야 합니다. 작가 김홍신은 꿈꾸는 자와 꿈에 닿는 자와의
간격이 큰 이유를 이렇게 비유한다.
“단(鍛)은 천 번을 연습하는 것이고, 련(鍊)은 만 번을 연습하는 것이다.
철을 두드릴 때 천 번 두드리면 ‘단’이고, 만 번 두드리면 ‘련’이다. 이런
‘단련’ 없이 원래 타고난 것만 가지고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다”
북을 천 번 두드린 사람의 소리와 만 번 두드린 사람의 소리가 같을 수 없
지 않은가. ‘이 정도면 됐다’는 걸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얄팍한 사람은 운을 믿고, 강한 사람은 원인과
결과를 믿는다.”고 했다. 고만고만한 생각으로 살면 고만고만한 결과만을
얻는다. 리스크를 너무 피하지마라.
작은 리스크를 피하려다 더 큰 리스크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