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리코너 장인수 선생 노량진 대성학원 입시 전문학원에서 강사로 퇴직후 1만여권의 책을읽고 주옥같은 내용 을 선별하여 진서리 코너에 게제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꿈 자식에게 읽게 하십시요
  • 단종유배지 영월을 찾은 감회
  • 2016-09-22
진서리






단종의 유배지 영월 땅을 찾아 23


강원도 영월은 예부터 명산준령과 산간계곡이 조화를 이룬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산간 오지 마을로 꼽혀왔다.


그런데 깊은 산골에서 한과 슬픔이 묻힌 역사의 현장으로 바뀐 것은 조선의 제6대 왕 단종의 유배지가


되면서부터다.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당한 뒤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에 묻히기까지 영월 곳곳에는 단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은 멀고 먼 영월 땅으로 유배길에 오른다. 창덕궁 대조전에서


유배교서를 받고 1456년 음력 622일 돈화문을 출발해 한강나루에서 남한강 뱃길을 따라 양주, 광주, 양평,


, 원주를 거쳐 닷새 만에 영월 땅 주천에 당도했다고 한다.


단종의 유배 행렬은 험준한 군등치를 넘고 다시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배일치에 힘겹게 올랐다. 배일치 고


갯마루에 이른 단종은 자신을 위해 죽어간 사육신을 떠올리며 궁궐이 있는 서쪽을 향해 고마운 마음으로


큰절을했다. 지금 배일치 고갯마루에는 절을 하는 단종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배일치를 넘고 물길을 돌아 도착한 곳이 청령포.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이레가 걸렸다고 한다. 청령포


3면이 서강으로 둘러싸여 반도를 이루고,나머지 한 면은 육육봉의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어 육지이면서도


외딴 섬이나 다름없다. 나룻배가 아니고서드나들 방법이 없는 천혜의 유배지인 이곳에서 단종은


두 달간 유배생활을 했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청령포까지 3분 남짓 걸린다. 맑은 강물과 빽빽하게 늘어선 소나무가 유배지가 아닌


유원지 같은 느낌을 준다. 어디까지나 청령포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곳에 갇혀 꼼


할 수 없었던 단종에게는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았을 터. 배에서 내려 소나무 숲에 발을


디디면 단종을 따라온 궁녀와 관노가 생활하던 행랑채가 보인다. 그 옆에 단종어소가 있다.


처음 단종이 유배되어 왔을 때에는 따르는 궁녀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단종어소에는 특이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담장 밖에서 단종어소를 향해 절을 하듯 굽은 모양새가 눈길을 끈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지금의 장릉에 묻은 엄홍도의 충절을 기려 '엄홍도소나무'라고 불린다.


단종어소를 나오면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관음송이 웅장하게 서 있다. 키가 30m에 달하는 이 나무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소나무 중 가장 키가 크다.


아랫부분에서 두 줄기가 하늘로 높이 뻗어 오른 모습이 품위 있고 자태가 아름답다.


관음송은 단종의 유배생활을 지켜본 증인이다. 그래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오열하는 소리들었다


하여 볼 관()', '소리 음()' 자를 써서 관음송이라 이름 붙였다.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의 시신은 수습되지 않고 동강에 버려졌다. 아무도 시신을 거두는 이가


없었다.세조가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단종은 죽은 후에도 편안할 수 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영월 지방의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목숨을 걸고 동강에 나가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다.


엄홍도는 지게에 단종의 시신을 싣고 능선을 오르다 노루가 잠자던 자리에 눈이 쌓여 있지 않은 것을 보고 그곳에


시신을 암매장했다. 세월이 흐른 뒤 영월에 부임하는 군수들이 줄줄이 죽는 괴이한 일이 발생했다.


누구도 영월군수로 오려고 하지 않았는데, 박충원이라는 사람이 용기를 내 부임했다. 어느 날 박충원의 꿈에 단종


혼령이 나타나 산 속에 묻힌 사실을 알려주었고, 그곳을 수색한 결과 단종의 시신이 발견되어 봉분을 정


성스레 조성했다. 그후로 영월군수가 변을 당하는 일이 없어졌고 영월 땅도 평안했다고 한다.


숙종 24(1698)에는 단종을 복위시켜 그의 무덤을 장릉이라 했다. 죽어서도 한을 풀지 못했던 단종이 숙종


에 의해 241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장릉은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무덤으로 오르는 길에도 예외 없이


소나무들이 사열하듯 늘어서 있다. 신기한 것은 소나무가 예를 갖춰 능을 향해 절을 하듯 굽어 있는 모양이 많다는


사실. 우연이겠지만 비통한 죽음을 맞은 단종의 넋을 기리는 듯했다.


! 인생이란 무엇인가? 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세상사 여부운(世上事 如浮雲) 세상사 모든 것은 뜬 구름 같더라.


성고분 인산후(成古墳 人散後) 봉분을 만든 후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진다.


산적적 월황혼(山寂寂 月黃昏) 산속은 적막하고 달빛만 황혼이더라.


< 중국의 시인 맹사성 >


세상에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은 없는 법,


죽고 나면 후손들 시신을 묻은 뒤 모두 흩어지고


깊은 산 속에 쓸쓸히 누워있을 자신을 생각해보라는 시인의 가르침 아닌가.


젊은 날 건성으로 찾았던 여행지를 배낭여행으로 다시 찾아 세심하게 둘러보니 이제야


제대로 된 여행을 하는 것 같다.


첫날은 단양 고수동굴과 구인사를 둘러보고


둘 째 날은 영월 단종의 장릉과 청령포를 셋 째 날은 태백산을 오르고 하산 길에


태백 탄광 체험학습과 태백 탄광 박물관을 둘러보는 알찬 여행을 한 것 같다.